<사설>KEDO,생색만 내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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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미국의 북한정책은 들려오는 소리마다 재주는 남이 부리게하고 실속은 자기네가 챙긴다는 속담을 생각케 한다.우리 사정은접어두고 북한에 쌀지원을 더 하라고 종용한다 더니, 이번엔 미국이 북한에 제공해야 될 중유값을 마련한다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구조까지 바꾸려 한다는 소식이다.
KEDO 구조변경과 관련된 미국의 제안은 현재 한.미.일(韓.美.日)3국만으로 이뤄진 집행이사국에 유럽연합(EU)을 추가하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미국이 내야할 중유값중 일부를 EU에 떠맡기는 대가라는 것이다.11일부터 서울에서 모이는 한.미.일 KEDO 관련 회의에서 논의된다고 한다.
미국의 형편을 봐선 우리측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경수로완성 때까지 미국이 북한에주기로 약속한 중유는 해마다 50만,값으로 따져 5,000만달러 규모다.그런데 올해 미국정부가 의회에서 승인 받은 예산은 1,900만달러가 고작이다.그래서 중동 산유국과 유럽국가에 도움을 요청,결국 EU가 KEDO 운영에 참여하는 조건이라면 2,000만달러를 부담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EU의 제안을 우리와 일본에 수락하라고 종용해우리 정부는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어 울며 겨자먹는 격으로동의할 생각인 듯하다.문제는 그렇게 될 경우 경수로 제공사업을남북한 관계개선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우리의 대북(對北)정책이적지 않은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데 있다.
우선 KEDO의 정관(定款)을 개정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집행이사국이 하나 더 늘어남으로써 의사결정과정이 그만큼 복잡해지고 효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또 EU가 경수로가 완성될 때까지 10년동안 돈을 내는 만큼 KEDO에서 의 발언권은물론,경수로 공사참여도 요구할 것은 뻔한 일이다.따라서 우리가부득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런 역작용을 최소화하도록 EU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차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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