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票만 의식한 정치권추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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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추파가 점입가경이다.
연예계를 급습했던 추파가 언론계로 향하더니 이제는 경제계 인사들에까지 미치고 있다.손을 꼽을만한 대기업 경영진에서부터 건실한 중견기업 사장들에 이르기까지 정치권의 영입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마치「저명인사 징발령」이 내려진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역설적으로 우리 정치권이 얼마나 무원칙하고 편의주의적인 발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놀라지 않을수 없다.
그동안 경제계 인사들중에 정치권에 진입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아니다.그러나 본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희망과 무관하게 정치에 몸을 담았던 경제인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이번에 영입대상자로 거론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수십년동안 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대부분이다.이들이 경제에서 기여할부분과 정치에서 기여할 부분을 비교해보면 대차대조표가 금방 나오는 사람들이다.물론 본인이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면 별개다.
문제는 지금 영입대상 경제계 인사들 대부분이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정치권의 필요성만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당장 영입 대상자에 오른 많은 사람은 자의가 아님을 하소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정치권의 요구가 얼마나 즉흥적인지 알수있다. 표만을 의식한 정치권이 이들을 데려다 무엇을 할지도 분명하다.한마디로 이들의 전문성과 유명세를 마치 일회용 상품으로내세워 반짝장사를 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세계 경제는 「국경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정부가 세계화를 국정지표로 삼은 것도 불과 1년전이다.경제연구소의 전망을 예로 들 것도 없이 올해 우리 경제는 그 어느때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새해벽두 경제계를 우울하 게 하고있는 시점이다.
정치가 국민을 잘 살게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면 정치권이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자명하다.지난해말 우리는 과거청산 작업을 통해 권위주의 시대에 경제가 정치 권력에 의해 얼마나 왜곡된 관계를 형성해 왔는지 지켜봐야했다.국민소득 1만달러 돌파라는 영광의 뒤안길에서 정치와 경제의 떳떳하지 못한 거래가 있음도 보았다.지금 정치권의 무분별한 경제계 인사 영입작업을 보면서 또다른 정경왜곡의 씨를 뿌리는게 아닌지 걱정한다면 과연 기우일까.
박승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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