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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회 비례대표 임기 나눠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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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천시의회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 3번 김미화(53·여)씨는 7월 시작되는 시의회 후반기를 앞두고 마음이 복잡하다. 현직 비례대표를 사퇴시키고, 이 자리를 승계시켜주겠다는 2년 전의 약속이 지켜질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전체 의원 17명의 김천시의회는 비례대표가 2명이다.

김씨는 “2006년 지방선거 때 2년 후 시의원을 시켜주겠다는 말을 듣고 당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인 임인배(54) 전 의원(18대는 공천 탈락)의 부인이 사석에서 나를 두고 ‘후반기 시의회에 들어갈 사람’이라고 공공연히 소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지구당이나 현직 비례대표 시의원은 의원직 승계에 대한 약속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현직 비례대표 강준규(55) 시의원은 “지구당에서 4년 임기를 2년씩 나눠서 공천한다는 이야기는 있었으나 그 뒤 유야무야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는 “지역 국회의원이 바뀌니 약속이 온데 간데 없어졌다”면서 “문서화해 놓은 것은 없으나 당원들은 다 아는 약속”이라고 반박했다.

◇‘나눠주기’ 공천 곳곳서 말썽=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 상당수 지역에서 비례대표 기초의원 임기를 절반씩 토막 낸 사실이 드러나 잡음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각 지구당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정하면서 임기 4년의 의원직을 특정인들끼리 전·후반기 2년씩 나누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측은 “지방선거에 대한 당원의 관심을 독려하기 위해 도당별로 진행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기초의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첫 도입돼 의원 정수의 10분의 1을 뽑게 돼 있다.

7월 후반기 개원을 앞두고 후반 2년을 약속 받은 후보들이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으나 현직 기초의원들은 대부분 비례대표직을 고수하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갈등이 일고 있다. 경북에서는 김천 이외에 안동·칠곡·영덕·울진·봉화·의성·청송 등에서 이런 일이 빚어지고 있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지난 총선에서 바뀐 곳이다. 국회의원이 바뀌면서 약속 이행을 보증할 책임자가 사라져 버린 셈이다.

경기 파주시의회는 이 문제가 발단이 돼 비례대표 한 명에 대해 자격상실 결정까지 내려졌다. 파주시의회 전미애 한나라당 비례대표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지구당에 ‘2008년 6월 30일자로 사퇴한다’는 자필 사직서와 인감증명서를 냈다. 최근 이 서류가 시의회 의장에게 전달됐으나, 전 의원은 의장실에서 “사직서는 지구당 측의 지시로 작성돼 원인무효”라며 사직서를 찢어 버렸다. 파주시의회는 20일 윤리특위를 열어 전 의원에 대해 자격상실 결정을 내렸다. 공천을 위해 불법 사직서를 작성한 데다 이를 찢어버리는 등 의원의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다.

한나라당 강원도당도 태백시와 인제군의 비례대표 기초의원에게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도당은 이달 말까지 현 의원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윤리위에 회부하고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그러나 해당 의원은 사퇴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방자치 망치는 행위”=김천시의원 비례대표 공천을 주도했던 임인배 전 국회의원은 “임기 2년으로 나눠 공천한 것은 지방선거에서 당에 기여한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자는 도당의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천 심사과정에서도 공개적으로 언급됐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강원도당 방종현 사무처장도 “직능 대표를 나눠먹기식으로 배정한 것은 도덕적 문제는 있지만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방의원직을 상품처럼 거래하는 행태에 대해 비난 여론이 높다. 계명대 최봉기(행정학) 교수는 “이런 반토막 임기 공천은 정당이 지방자치를 망치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직능대표를 뽑는다는 정신에도 어긋나고, 편법을 통해 민의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한 개선책이 거론되고 있다. 김종률(증평-진천-괴산-음성) 의원은 최근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송의호·이찬호·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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