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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집창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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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모든 여자는 일생에 한번은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신전 앞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낯선 남자와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어느 시절에는 이런 법이 있었다고 한다. 여행자가 여자 중 한명을 골라 동전을 던져주면 여자는 그 남자를 따라가야 했다. '일'을 끝낸 여자는 여신에게 소망을 빌고 집으로 갔다고 전해진다. 고대 인도.이집트에서도 사원(寺院) 무희 등이 참배자에게 몸을 맡기고 보수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전이나 사원이 성매매 장소로 쓰였던 것이다.

윤락녀가 집단 거주하는 집창촌(集娼村)에는 공창가(公娼街)와 사창가(私娼街)가 있다. 허가를 받고 떳떳이 영업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사창이야 그 연원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겠지만 공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고대 그리스부터다. 매음업을 인정해주는 대가로 세금을 받아 재정에 충당한 것이다. 성병이 창궐한 19세기 말까지 거의 모든 유럽사회에서 공창가는 보호받았다. 일본에서 공창의 일종인 유곽(遊廓)지대가 등장한 것은 1585년이었다. 당시 위정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의 게이세이초를 유곽으로 처음 공인했다. 이것이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 들어왔고, 미 군정이 폐지할 때(1947년)까지 전국 곳곳에서 공창이 유지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성매매는 근절 대상이지만 실제로 이에 성공한 곳은 거의 없다. 오히려 공창을 살려 사창이나 인신매매를 줄이려는 나라가 적지 않다. 독일에선 몇년 전 매춘부에게 사회보험권.노동권을 인정하는 법안이 발효됐다. 네덜란드.벨기에 등도 일부 지역에 한해 매춘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사창가를 단계적으로 없애겠다고 밝혔다. 윤락업계는 "차라리 영업을 합법화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우리 정서상 어림없어 보인다. 오죽하면 이런 정책이 나왔을까마는 그 효과에 대해선 의문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눈에 보이는 집창촌만 없어질 뿐, 성을 물신화(物神化)하는 남성 위주의 사회풍토에서 성매매의 수요.공급은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다. 영국 매춘부 출신인 니키 로버트는 자신의 저서 '역사 속의 매춘부들'에서 이렇게 통박했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 운동가들조차 자신들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고….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