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역사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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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연말을 맞아 올해를 회고하고 내년을 전망하는 각종 통계와 여론조사들이 나오고 있다.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 대한 양극적인 평가다.그는 올해의 인물 또는 올해 가장 좋아하는 인물 베스트 5위안에 들어간다.그런데 그는 동시에올해 최악의 인물 또는 싫어하는 인물의 5위안에도 들어가 있다. 그의 업적에 대한 여론조사들도 비슷하다.노태우(盧泰愚)씨의부정축재를 캐내 그를 구속하고,전두환(全斗煥)씨를 반란수괴로 기소한 것은 거의 90%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고 있다.거의 절대적이다.그런데 그에 대한 총체적 인기도는 40% 선을 맴돈다.이 50%의 갭은 무엇 때문일까.그에 대한 양극적인 평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눠지는 데 대해선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그에 대한 인기의 가장 큰 부분은 그가 최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과거 청산작업 때문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를 깎아내리는 요소들은 국민을 불 안하게 만들고,대선자금에 관대해 선명하지 못하며,총선을 겨냥한 정략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들이 지적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역사청산으로 점수를 따면서 동시에 비판받고 있는 것이다.역사청산작업에 대한 비판론을 펴는 이들중엔 내로라 하는 유력한 학자나 지도층 인사들도 있다.그들은 병자년위기론,안보불안론을 전파하는데 열성적이다.그들은 북한군 장교출신 공작원들이 침투해 때를 노리고 있다거나,북한이 전쟁준비를 하고 있는데 우리장교들은 자기 이름이 소환명단에 들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무력감에 빠져있다는 소리들을 해댄다.심지어는 역술가들의 주장까지도 동원된다.
정부나 집권당이 다급한 것은 사실이다.과거청산으로 YS는 박수를 받았다하더라도 신한국당의 인기는 10%선을 헤맨다.벌써부터 신한국당이 내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조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신한국당이 참패한다면 정부는 집권당의 뒷받침을 전혀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그렇게 된다면 정치상황은 너무도 불안정하고 혼돈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혼란이 반드시 국가적 혼란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서도 안된다.실제로 위기설은 크게 과장되고 있는 것이다.대통령의 인기 50%의 갭은 역사청산작업에 따른 불안감 때문이 아니라 바로 역사청산의 불철저함,역사청산작 업의 정략이용에 따른 모호함 때문 등이다.
때문에 이런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우선 현 단계에 대한 상황인식이다.우리에게 주어진 지상과제중 하나는 바로 부패구조를 타파하는 일이다.盧씨 부정축재사건을 통해 우리는 부패구조의 심각성과 그 규모에 경악하고 말았다.거기다가 집권당의 선거경비,정치인들의 정치자금등을 합치면 아마도 어마어마한 액수가 될 것이다.그런 부패비용이 경제를 왜곡시키고 권력을 타락시킨 것이다.
그리고 정부 권력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문제가 있다.군부정권의유산을 청산하지 않고서는,그리고 거기서 정권찬탈을 위해 저질러진 행위들에 대한 징벌이 없이는 제대로된 법치(法治)의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절대로 조바심을 내서는 안된다.외국의 경우 역사적 청산을 위해 수년 또는 십수년이 걸리는 수도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우리는 5.18특별법에 따른 두 전직대통령의 재판이,그리고 광주문제 .부패문제에대한 규명이 몇달안에 끝나리라고 기대해선 안된다.적당히 총선용으로나 써먹고 종료하려 한다면 그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미국 하원의장으로 미국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 화제를 일으킨 뉴트 깅그리치는 『미국의 재생』이란 책에서 미국이 한 세대에 한번꼴로 개혁을 해왔다고 지적하고 있다.그 변화의 기간에 에너지가 분출하고 갈등이 일고,그리고 재탄생이 이뤄진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도 군부통치 30여년이라는 과정을 거친후 이제야 진정한 변화의 코스에 들어선 것이다.金대통령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그가 자기희생을 각오하고 역사청산작업을 추진한다면 그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과정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편집국장대리) 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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