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와 후쿠도메는 인연이 깊다. 1977년생 동갑내기인 둘은 10여 년 전 한국과 일본 아마야구의 자존심이었다. 김선우는 에이스였고 후쿠도메는 4번 타자여서 막아야 되고 무너뜨려야 할 관계였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97년 대만 아시아선수권에서는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애틀랜타에서 후쿠도메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대만에서는 김선우가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장군 멍군이었다고나 할까.
이후 둘은 다른 길을 걸었고 지금은 하늘과 땅처럼 천양지차가 됐다. 김선우는 97년 11월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지만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올해 국내로 돌아왔다. 고려대 2학년 때 성급하게 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큰 물’에서 뛸 준비를 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국내 최고 투수라는 부담감은 미국 생활 내내 올가미가 됐다.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면서 어깨를 짓눌렀다. 그럴수록 마음을 비워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운도 그를 외면했다.
반면 후쿠도메는 일본 사회인야구에서 2년을 더 뛴 후 99년 주니치 드래건스 유니폼을 입고 지난해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경험을 쌓았다. 준비 기간이 무려 10년이나 됐다. 김선우가 올해 초 쓸쓸히 비행기 트랩을 내릴 때 그는 신인 최고 연봉(1200만 달러, 약 120억원)를 받고 당당히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후쿠도메는 현재 3할 언저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첫해를 보내고 있다.
후쿠도메뿐이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뉴욕 양키스 4번을 치고 있는 마쓰이 히데키, 올해 LA 다저스에 입단한 구로다 히로키까지 최근 10년간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30여 명의 일본 선수는 거의 모두 성공을 거뒀다. 김선우·봉중근(LG)· 송승준(롯데)처럼 대학을 다니거나, 고교를 졸업하고 막 바로 미국에 간 것이 아니라 상당 기간 일본 프로 무대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뒤 태평양을 건넌 것이다.
지금 한국 메이저리거들은 거의 전멸 상태다.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박찬호와 마이너리그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추신수, 백차승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활약을 하는 선수를 찾기 어렵다. 국내에서 기본기를 다지고 경험을 쌓은 뒤 해외로 눈을 돌려도 늦지 않을 터인데 눈앞의 ‘작은 이익’에 덥석 태평양부터 건넜기 때문이다. 준비한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이석희 야구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