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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무대의상의 전설’이 된 독립운동가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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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재미동포 2세 윌라 김(91·사진)은 한국계로는 유일하게 미국 ‘무대예술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물이다. 일에 대한 집념과 고집으로 ‘드레곤 레이디’로 불리는 그는 150편이 넘는 뮤지컬·연극·발레 의상을 디자인했다. ‘뮤지컬의 아카데미 상’이라는 토니 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방송 프로그램에 주는 에미 상도 두 번 받았다. 일제에 맞서다 미국에 망명했던 독립운동가 김순권 선생의 딸이다.

한국에서는 2차대전과 6·25전쟁에 참전했던 고 김영욱 미군 대령의 누나로 잘 알려졌다. 김 대령은 2차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 부대의 지휘관으로 참전했으며, 미군에서 아시아계로는 첫 대대장을 지냈다. 이탈리아 중부에 독일군이 설치했던 고딕라인 돌파 등의 공을 세워 무공 훈장을 받았다. 그런 내력의 윌라 김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인천시에서 최근 개관한 이민사 박물관에 동생의 기념관이 들어서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현장에서 그를 만나 반세기에 걸친 역정을 들었다.

뉴욕 브로드웨이 거슈윈 극장 로비에 있는 ‘무대예술 명예의 전당’에는 그의 이름이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와 유진 오닐, 배우 캐서린 헵번과 줄리 앤드루스 등과 나란히 새겨져 있다. 경력이 25년이 넘고, 주목받은 작품이 적어도 5개는 되는 인물을 대상으로 미국무대예술비평가협회가 까다로운 선정 과정을 거친 사람만 이곳에 이름이 오를 수 있다.

그가 선정된 것은 2007년. “세월이 얼만데, 오를 때도 됐지 뭐”라며 호탕하게 웃는 그의 목소리는 아흔을 넘겼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카랑카랑했다. 옅은 하늘색의 단아한 블라우스와 바지, 산뜻한 반지와 팔찌도 눈에 띄었다. 91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브로드웨이 등 각종 무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현역이다. 지난해에는 발레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재작년에는 오페라 ‘투란도트’를 무대에 올렸다. 올해도 작품을 여럿 구상 중이다.

1917년 4남2녀의 장녀 ‘김월나’로 태어나 LA에서 자란 그는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다. LA시립대학 시절, 그는 그림 외에 반전·반파시스트 운동에 열을 올렸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주축이 됐던 독립운동 기구 ‘동지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일본 및 파시스트 국가들에 반대하는 집회도 열고, 행진도 했지. 한번은 LA시내 극장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몸이 아파서 동생(김영옥)을 보냈어. 그런데 글쎄 애꿎은 동생이 전단을 나눠주다가 경찰에 잡혀서 신문에 사진까지 났지 뭐야. 참 상냥하고 친절한 아이였어.”

그러다 명문 캘아트의 전신인 셰나르 미술대학에 장학생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받았다. 그때 패션 일러스트에 빠졌고, 졸업 뒤 백화점을 거쳐 파라마운트 영화사에 일자리를 구해 무대예술 분야의 일을 하게 됐다.

“어느 날 복도를 걷는데 어떤 사무실 안에 너무나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보이기에 홀려서 들어갔지. 유명한 무대예술 전문가인 바바라 카린스키와 라울 펜 뒤부아의 작품이었어.” 그를 눈여겨본 카린스키가 색채 샘플 작업을 의뢰했고, 이를 계기로 그의 조수로 일하게 됐다.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고, 뒤부아의 사촌과 결혼도 했다.

“친구 얘기를 듣고 찾아간 점성술사가 ‘곧 인생을 바꿀 일이 일어날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라고 하더군. 정말 열흘 정도 뒤에 극작가 친구가 전화를 해서 오프브로드웨이 연극의 무대의상을 해보자 하더라고. 두말없이 좋다고 했지.”

그렇게 시작한 것이 1961년 막을 올린 ‘사랑의 붉은 눈’이라는 뮤지컬이다. 그 뒤 66년 브로드웨이 정식 데뷔에 이어 발레·오페라 등으로도 영역을 넓혀갔다.

성공 비결을 묻자,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하고 완벽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작품과 등장인물의 배경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물론, 배우들 개인의 신체적 특징을 파악한 뒤에야 스케치를 시작한다고 한다. “배우들이 의상을 입었을 때 편안하게 느끼고, 그들의 움직임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무대의상 철학이다.

윌라 김이 의상을 맡았던 뮤지컬 ‘윌 로저스 폴리스’의 결혼식 장면. 신부가 쓴 베일의 길이가 9m나 됐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91년 두 번째 토니 상을 받았다. [사진제공=윌라 김]

그는 고집쟁이다. 자신이 의도한 무대의상이 완벽하게 나오지 않으면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다. 81년 ‘세련된 숙녀들’이라는 뮤지컬 의상 작업을 맡았는데, 제작자들이 의상을 맘대로 고치자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떠나버렸다. 이 작품은 처음엔 혹평을 받았으나, 예술감독이 바뀐 뒤 윌라 김의 의상을 다시 가져와 공연을 하면서 비로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첫 토니 상을 거머쥐었다.

윌라 김은 의상에 직접 도료를 사용해 색을 입힌 무대의상을 처음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화가의 꿈을 살려 의상에도 그림을 그려 넣고 싶었어.”

그는 “중요한 건 새로운 걸 시도해보는 낭만”이라고 강조했다. “다들 이미 해본 것을 하고 싶어하지. 편하고, 예산도 덜 드니까. 하지만, 그래선 재미가 없지. 진부한 건 지루한 거야. 관습에 맞서서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것이 예술가들의 몫이지.” 이런 맥락에서 그는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라고 했다.

그가 사는 뉴욕 맨해튼 아파트의 방 9개는 무대의상 자료와 디자인 도구로 꽉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멈출 줄 모른다.

“아직 기억력이 남아있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데, 그만하겠다는 건 바보 같은 일이야.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지.”

글=전수진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중앙NEWS6] 재미동포 윌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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