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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지리기행>11.도선과 옥룡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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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도선의 자취를 찾는 것은 우리 지리학의 연원을 찾는 길이다.
그런 점을 처음 지적한 사람은 지리학 전공자로서는 안타깝게도 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교수다.87년4월 대한지리학회가 주최한 「국학으로서의 지리학」이란 심포지엄중 그는『고려시 대에도,조선시대에도 지리학을 얘기할 때는 학문의 시조 혹은 비조를 으레 듭니다.그래서 떠오르는 사람이 도선 아닙니까.신라말에 살았던 도선이라는 승려는 우리나라 지리학의 비조로서 고려는 물론 조선시대 실학자들도 그에 대한 관심이 대단 했습니다.우리나라 지리학은 도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말하자면 학문의계통을 따질 때 중국에 연결시키지 않고 우리 지리학이 도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인식해온 사실이 이미 우리 지리학이 가지고 있는 민족지리학으로서의 전 통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런 생각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농담삼아 지리학 하시는 분들이 먼저 하셔야 할 일이「도선비」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있습니다』는 얘기를 제1주제 토론에서 발언했다.
참으로 고맙고도 적절한 지적이지만 누구도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인 흔적은 없다.지리학이란 학문 자체가 그 땅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에 사실 우리 고유의,혹은 우리 자생의 전통이 가장 강한 학문분야를 꼽아보라면 지리학을 꼽 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선국사는 지금 어디가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이기적인 잡술 풍수지관들 사이에서 또는 여관 골목 점술가들 사이에서 수모를 당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도선의 출생지인 영암을 떠난 발길은 자연스럽게 그가 만년을 보내고 열반에든 광양 백계산 옥룡사를 찾아들게 되었다.그가 옥룡자(玉龍子)란 도호로 불리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현재의광양시옥룡면추산리 외산마을에 옥룡사라는 암자가 있으나 이는 근래에 지어진 것이고 순천대박물관 지표조사팀 보고서에 의하면 본래의 사지는 이 부근 일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옥룡면.서울에서도,영암에서도 먼 길이다.벌써 날이 저문다.어떤 인연이 있어 오늘밤은 백운산 중턱에서 자기로 한다.해안에서멀지 않은데도 해발 1,200가 넘으니 대단한 산이다.눈발이 흩날리면서도 하늘 군데군데로 별이 돋는다.눈도 보고 별도 보는희한한 산길이다.하지만 눈은 더 내릴 생각이 없나보다.이내 구름 한점 없는 현묘한 하늘에 별만 새파랗다.
산속에서 보는 별들은 참 이상하다.꼭 아기 주먹만한 크기에 빈틈없이 빽빽하게 하늘을 채우고 있다.알다시피 지금 서울에서는별 구경하기도 어렵다.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서울 주택가에서 선명한 그림자를 만들어주는 깨끗한 보름달과 초롱 거리는 별을 볼 수 있었다.달그림자와 간혹 나타나는 전깃불에 비치는 그림자로 한 사람에게 두개의 그림자가 생기면 귀신이라고 놀리기도 했는데 그게 몇년 전 일이라고 이렇게 아득하게만 생각되나.
왜 이 지경으로 변했을까.그래도 이를 일 컬어 발전이라고 한다.도무지 모를 일이다.
달과 별,그리고 밤은 사람들에게 꿈과 상상력을 심어준다.지금은 그런 것들이 없어진 세상이다.달도,별도 심지어 밤까지도 빼앗아가버린 것이 오늘날 도시적 삶터의 실상 아닌가.백운산에서 맞는 겨울밤의 달빛은 그 꿈의 원형으로의 회귀를 인도하는 길이며,나뭇잎을 스치는 스산한 바람소리는 삶의 신산스러움과 덧없음을 알려주는 가르침의 소리처럼 들린다.
광양을 잘 아는 시인 민후립의 안내로 근 20년만에 옥룡사를다시 찾게 되니 옛길이 떠오르련만 별로 기억이 없다.그저 아늑하고 편안하기만 한데 좀 좁아졌다는 느낌이 든다.주위에 나무들이 자랐고 나이가 더 먹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게다.하지만 절터의 당국이 좁은 것은 사실이다.옥룡사 사역(寺域)이 비좁아몰려드는 승려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가까운 곳에 운암사를 창건하게 됐을 것이라는 순천대 조사팀의 추정은 그래서 근거가 있다. 절로 올라가는 길가 풍경은 그대로 우리 농촌 마을의 전형이다.위로는 둥그스름한 산들이 올망졸망 어깨를 겯고 있고 아래로는 고만고만한 논밭이 골골마다 평평하게 자리잡았다.『황제내경(黃帝內經)』에 나오는 『하늘이 둥그니 인간의 머리가 둥글고땅이 평평하니 인간의 발이 평평하다』는 말마따나 어찌 그리도 땅 모습이 사람을 닮았는지.아니 사람이 땅을 닮은 것인지.하기야 도선국사와 관련된 사찰 입지는 하나같이 평범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도갑사가 그렇고 화순 운주사 가 그러하며 곡성 태안사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풍수의 영향을 받은 신라말 이후의 큰 가람처럼 웅장하면서주위를 압도하는 거대한 산자락에 터를 잡는 식이 아니다.그저 외가 가는 길처럼,고향 가는 길처럼 둔덕같은 산들과 여기저기 박혀 있는 들판을 따라 걷다 보면 수줍은 듯 들 어앉아 있는 절이 바로 도선의 절들이다.어디서나 대할 수 있는 우리 땅의 전형인 것이다.
지리산 벽송사의 종화스님은 이곳을 청학동에 대한 백학동(白鶴洞)이라 했다는데 이 역시 도가(道家)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청학보다는 훨씬 더 우리 정서에 가까운 듯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절터 아래 빼곡이 들어서 있는 지방문화재 백 계산 동백나무숲도 결코 우람해 좌중을 짓누르는 나무가 아니다.그냥 사람 키만 하게 자라나는 친근한 수종이다.거기에 세월의 풍상이 덧씌워져 주름이 잡혔으니 우리 할머니.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옥룡사를 복원 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결코 산을 잘라내고 우람한 사찰을 세우는 일은 없어야 할것이다. 이런 얘기가 전한다.우리 국토가 호랑이인데 이곳은 바로 그 호랑이의 엉덩짝 중에서도 똥구멍에 해당하는 곳이라는….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를 보면 우리 국토를 마치 대륙을 향해 웅크리고 있 는 호랑이처럼 그려놓은 것을 알 수 있다.한데 이 호랑이가 아직은그저 네발을 구부려 웅크리고 있을 뿐 어떤 움직임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옥룡사는 바로 그 호랑이의 똥구멍을 침으로 찔러 대륙으로 웅비(雄飛)하라는 위치의 절터라는 생각이 스친다.아니그것은 당위(當爲)인지도 모른다.
〈前서울대교수.풍수지리연구가〉 최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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