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1% 대북 기금 조성’ “민간도 참여” 주장 힘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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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달 15일까지 포장공사를 했던 평양 개선거리 도로가 16일 통행이 재개됐다. 흰색 차선과 검은색 아스팔트가 선명히 대비되는 도로 위를 차량들이 달리고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북한과 일본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접촉이 재개됐다.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도 시작됐다. 테러지원국 해제와 대북 적성국 교역 금지법도 실마리를 찾고 있다. 대립각을 세우며 긴장관계를 유지해 오던 북·미, 북·일 관계 변화로 동북아시아 질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2005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북핵 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잡은 게 이유다.

북한을 둘러싼 국제 정치환경의 변화는 경제 교류 확대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 중국 일변도의 대북 투자도 이집트·쿠웨이트 등 중동국가로 확대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도 대북 투자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저울질하고 있다. 북한 역시 올 초부터 ‘대외경제관계 개선’을 강조하며 국제사회로 편입을 시도 중이다. 그래서 한국의 정부와 기업들도 보다 실용적인 시각으로 대북 접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념대결에 앞서 남북관계를 서로 이익이 되도록 관리하는 게 ‘실용’”이라며 “경제적 관점에서도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정부와 대비되는 새로운 대북정책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북핵 해결 진전, 경제적 타당성, 우리의 재정능력, 국민 동의가 그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이후 핵 문제는 진전되고 있으나 남북관계는 아직까지 ‘냉전 중’이다. 또 최근 경제 침체로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북 경협 여건도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본사가 꾸준히 강조해 온 ‘정부예산 1% 대북지원에 쓰자’는 제안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나아가 정부 뿐 아니라 민간도 기금 조성에 참여해 대북 지원과 투자에 활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김 교수는 “동북아시아 정세 변화에 능동적이고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기금 마련이 시급하다”며 “특히 민간의 참여는 퍼주기 논란을 완화시켜 남북 경협의 진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경제적 관점에서 ‘실용’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영훈 박사(금융경제연구원)는 “북한은 마그네사이트·철광석 등 많은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자원 개발국이 될 수 있다”며 “북한도 최근 해외 자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남북 간 윈-윈하는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개별 기업 차원의 투자는 아직 인프라 부족 등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간 경제 격차가 통일과정에 장애가 될 것임이 분명한 만큼 이에 대비하자는 주장도 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남북 간 경제 격차와 산업구조·경제구조의 차이는 통일과정에서 우리 경제에 많은 문제와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대비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예산 1% 기금 조성’이 생각보다 시급히 필요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미국의 경제제재가 해제되더라도 국제 금융기구 등 국제사회의 공적 투자가 실제로 집행되기까지는 수년 이상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그 사이 우리의 투자가 이뤄진다면 국제사회의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생산성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강영진·김영욱·채병건·정용수·이철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동영상=이병구 기자
자문위원=조동호 이화여대 교수,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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