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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먹는 하마, 인플레에 뒤뚱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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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34면

사실상의 석유 배급제
상하이에 사는 왕웨이(王偉) 사장. 그는 지난주 자동차 기름을 넣기 위해 단골 주유소에 들렀다. 기름을 다 넣고 평소처럼 400위안(약 6만원)을 내밀었다. 그러나 직원은 “자동차 한 대당 200위안어치 이상은 주유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200위안을 돌려줬다. 왕 사장은 ‘더 넣으려면 다른 곳으로 가보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흔들리는 중국 경제

왕 사장은 상하이에서 자동차로 30분여 떨어진 쿤산(昆山)공장에 들어서면서 또 한번 놀라야 했다. 평소대로라면 물건을 싣고 나갔어야 할 트럭이 공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을 불러 이유를 물으니 “기름(경유)을 넣기 위해 주변 주유소를 돌아다녔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중국정부의 석유공급 통제 정책’이 왕 사장에게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 것이다. “상하이는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쿤산 등 인근 작은 도시는 아예 개점휴업 상태인 주유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주유소들이 경유의 경우 50위안 이상은 팔지 않습니다. 주유소에 트럭과 버스가 경유를 넣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유가 폭등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최고의 경제 현안이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가 공급을 통제할 만큼 더 심각하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자동차 총 대수는 약 880만 대(승용차 630만 대, 트럭·버스 등 상용차 250만 대)에 달했다. 전년 대비 21.8%가 늘어난 수치다. 한국의 전체 자동차 대수(약 1663만 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자동차가 작년 한 해 중국 도로에 새로 나온 셈이다. 자동차는 ‘석유 먹는 기계’다. 이들이 석유를 먹어 치우면서 중국 석유시장의 수급 균형이 깨지고 있다.

중국은 1992년까지만 해도 석유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93년부터 수입국으로 바뀌더니 지금은 전체 석유 소비의 약 4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작년 중국의 석유 수입량은 약 1억6300만t. 전년 대비 12.4%가 늘어났다. 국가개혁발전위 에너지연구소의 저우펑치(周風起) 연구원은 “중국 전체 석유소비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에 그치고 있지만 자동차 판매 증가는 중국의 석유소비 증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척도”라며 “2030년 중국은 석유소비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제유가 폭등에는 ‘중국의 역할’이 적지 않다. 전 세계 석유 수요에서 중국이 점하는 비중은 2004년 7.8%였던 것이 올해는 10% 선에 도달할 것이라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분석했다. 중국이 ‘세계 인플레의 진원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다급해진 정부, 속타는 기업
‘야오징위안(姚景源) 대 위융딩(余永定)’.
지난 1년 동안 중국 경제학계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인플레 논쟁의 주역들이다. 중국국가통계국의 경제분석가인 야오징위안은 대표적인 ‘관변 경제전문가’로 꼽히는 인물. 그는 2006년 말부터 시작된 인플레에 대해 ‘걱정할 일 아니다’라는 일관된 주장을 펼쳐왔다. “중국의 인플레는 돼지고기 등 식료품 가격 폭등 때문이다. 돼지고기 값만 잡으면 모든 게 정상화될 것”이라고 역설해 왔다. 국가통계국의 브레인으로 꼽히는 그의 이 같은 논리는 정부 정책에 그대로 반영됐다.

위융딩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소장은 이에 맞서 ‘인플레 위기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경제전문가다. 위 소장은 “국내외 경제상황으로 볼 때 중국은 분명 악성 인플레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며 보다 과감한 대책을 요구해 왔다. 위 소장은 특히 “인플레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과감하게 위안화 평가절상을 단행해야 한다”며 정부의 완만한 평가절상 정책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들의 논쟁은 지금 ‘위융딩의 승리’로 끝났다. 식료품에서 시작된 중국 인플레는 지금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7.7%로 전달에 비해 0.8%포인트가 낮아졌다. 그러나 누구도 지금 중국의 물가가 잡히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이 무려 8.2%에 달했다는 게 이를 보여준다. 송바오(宋豹) 완롄(萬聯)증권 연구원은 “생산자물가 동향은 5∼6개월 후 소비물가 동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당국의 안이한 대처가 물가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야오징위안과 같은 관변 경제전문가가 지금 공격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다급해졌다. 중국인민은행(중앙은행)은 일요일이었던 지난 8일 저녁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은행 지급준비율 1%포인트 인상’ 방안을 발표했다. 이로써 지준율은 17.5%로 높아졌다. 인민은행은 지난 2007년 1월 이후 모두 14차례에 걸쳐 지준율을 인상했다. 인상 폭은 모두 0.5%포인트였다. 한 번에 1%포인트를 인상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인플레 문제에 대해 초강수 카드를 뽑았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중국의 인플레 문제가 악화된 것은 고(高)에너지 소비형 산업구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세계 전체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GDP 기준)은 약 5% 안팎. 그러나 석유소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시멘트의 경우 50%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의 국제가격이 폭등하면서 인플레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올 1분기 중국의 원유·광석·대두 등의 수입 가격은 전년 대비 각각 66%, 81%, 77%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정부의 강력한 긴축정책에 기업은 속이 타 들어가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 대출 창구를 죄면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자금난이 악화되고 있다.

이 밖에도 위안(元)화 평가절상에 따른 수출 여건 악화, 연평균 15% 안팎에 달하는 임금상승, 원자재 가격 폭등이 겹치면서 기업은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특히 저장(浙江)· 광둥(廣東)·장쑤(江蘇)성 등의 중소기업들은 하루에도 수백 개 기업이 조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나빠지면서 ‘올림픽 이후 중국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란 위기론도 조심스럽게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저임금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중국 경제가 인플레 폭풍을 피해가지 못하고 결국 주저앉을 것이란 전망이다. 베트남 경제가 현 위기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게 되면,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증폭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중국은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기 때문에 과거 한국과 같은 외환위기로까진 가지 않겠지만 국내 고물가와 급속한 경기하강, 금융경색이 결합한 준(準)위기 국면에 처할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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