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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오의 법칙’으로 맞서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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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32면

야금야금 지갑을 파먹는 악당이 인플레이션이다. 보통 투자할 때 ‘돈 잃을 위험’을 리스크(risk)로 부른다. 그러나 슬슬 오르는 물가의 공격에 ‘쪼그라드는 구매력’이야말로 리스크의 본체다. 요즘 증권사와 은행 창구에는 인플레 시대에 내 재산을 지킬 방법을 찾는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급격한 인플레 때문에 앉아서 재산의 가치가 줄어드는 고통을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인플레 파고로 이미 실질금리는 마이너스가 됐다. 지난해 가을부터 예고한 일이긴 하지만 충격파가 심상치 않다. 올해 상저하고(上低下高)로 예보된 주가 기상도 역시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고수들에게서 인플레 땡볕 피하는 법을 들어봤다.
 
청개구리 국채
삼성증권 명동지점의 유지명(35) 과장은 부자들에게 인기다. 상품 보는 눈썰미를 인정받아 관리하는 자산이 총 1000억원을 넘어 얼마 전엔 ‘마스터 PB’에 올랐다. 그가 요즘 손님들에게 권하는 구급약은 물가연동국채다. “5월 소비자물가가 4.9% 올랐어요.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물가연동국채로 연 9%의 수익률도 바라볼 만하지요.” 역발상을 통해 되레 공포에서 돈의 씨앗을 발견하라는 소리다. ‘이에는 이’로 받아친다는 탈리오의 법칙을 따른 재테크다.

인플레 시대, 내 돈 어떻게 지킬까

지난해 3월 첫선을 보인 물가연동국채는 10년짜리 상품인데 이중 구조로 돼 있다. 먼저 소비자물가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물가가 오른 만큼 원금이 증가한다. 이에 더해 불어난 원금을 놓고 표면금리(2.7%)에 해당하는 이자를 6개월에 한 번씩 준다. 표면금리는 낮지만 원금이 늘면서 더 많은 이자를 챙긴다.

원래 물가가 오르면 채권 투자자는 불리하다. 만기에 받는 이자와 원금의 가치가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양종금증권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물가연동국채는 청개구리 같은 채권이다. 물가가 한국은행의 관리 목표치(2.5~3.5%)로만 올라도 원금을 7~9%로 불릴 수 있다.<그래픽 참조>

5%대인 은행 정기예금을 생각하면 수월찮은 수익이다. 세계적으로 인플레 적색등이 켜지면서 물가연동국채 시장은 최근 2년간 50% 늘어난 1조5000억원 규모로 커졌다.

삼성증권의 정복기 PB연구소장은 “주식형 펀드의 높은 수익률에 맛을 들였다면 채권이 하찮게 다가올 수 있지만, 요즘처럼 인플레 먹구름이 몰릴 때엔 원금을 수호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요즘 PB센터에서 물가연동국채가 기린아로 뜬 것은 세금 매력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만기가 10년이기에 이자에 대해 분리과세를 신청할 수 있다. 또 만기 때 불어난 원금은 모두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라는 말만 들어도 신경이 곤두서는 부자들에겐 그만이다. 동양종금의 박임준 대리는 “시장에서 그동안 분리과세 상품으로 사랑받은 국민주택 1종 채권이 대부분 만기가 돌아오면서 비슷한 채권을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물가연동국채는 한 달에 1000억원 정도 발행되는데 최근 기관투자가 등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 대리는 “만기가 10년이므로 장기성 자금을 투자하는 게 낫다. 채권을 중도에 처분할 수도 있지만 채권값의 변동으로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절세미인을 품 안에
‘인플레 때엔 실물에 투자하라’는 격언이 있다. 1970년대 말에 2차 오일 쇼크가 찾아왔을 땐 절구통이며 병풍 같은 ‘유사 골동품’까지 불티나게 거래됐다. 인플레는 돈의 가치를 줄이기 때문에 원금보전 성향이 강한 은행 문엔 발도 들여놓지 말라는 게 상식처럼 통했다. 요즘 분위기도 비슷하다. 신한은행 서춘수 스타시티 지점장은 “요즘 한숨 내쉬는 고객이 늘었다”고 했다. 마이너스 실질금리 때문에 특히 이자로 먹고 사는 은퇴자들이 팍팍해질 살림살이에 시름한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주식이나 펀드는 찜찜하고, 안전한 곳간을 선호한다면 이자를 한 푼이라도 더 챙기는 수밖에 없다. 금융상품 정보에 밝지 못한 노년층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 은행의 정기예금(1년) 금리는 연 5.5% 수준이다. 이자소득세(15.4%)를 내면 이자율은 4.7%로 낮아진다. 5월 물가가 4.9% 올랐는데 이를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0.2%’로 나온다. 서 지점장은 “결국 확정금리 상품에 돈을 많이 묻어두려면 절세 기법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먼저 ‘생계형 저축’은 금리를 1%포인트 정도 높이는 효과가 난다. 이자소득세를 물리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는 60세, 여자는 55세를 넘으면 1인당 3000만원까지 들 수 있다. 창구에서 정기예금을 들 때 “생계형으로 해달라”고 말하면 된다. 저축은행에서 가입하면 더 높은 금리를 챙길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 서혜민 자산관리전문 세무사는 “‘세금우대 저축’에 1년 넘게 투자하면 낮은 이자소득세(9.5%)가 적용된다”고 조언했다. 보통 2000만원까지, 60세(남자)가 넘으면 6000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다.

신협과 새마을 금고에서 파는 ‘조합 예탁금’은 숨은 알짜다. 농특세 1.4%만 떼면 세금은 끝이다. 원래 금리가 연 6% 수준인데 절세 효과를 더하면 6.5% 이상으로 보너스를 누릴 수 있다. 1인당 2000만원까지 들 수 있다.

서춘수 지점장은 “생계형(3000만원)+조합예탁금(2000만원)+세금우대(6000만원)의 3가지를 고루 써먹으면 총 1억1000만원을 절세전략에 투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부가 2억2000만원을 넣으면 연간 100만원 가까운 세금이 줄어든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는 혜택이 300만원에 이른다. 다만 생계형 저축과 세금우대 저축은 내년부터 없어지는데 정부가 일몰 시한을 연장할지 주목된다.

일부 은행은 다시 특판 카드를 꺼냈다. 하나은행은 주가지수 예금과 정기예금에 동시 가입하면 7.1% 금리(정기예금)를 주는 상품을 17일까지 판다. 외환은행도 주가지수연동 정기예금과 연 7%의 확정금리 정기예금을 결합한 상품을 27일까지 판다.
방패로 삼을 만한 펀드

인터넷에서 ‘딸기 아빠’란 필명으로 이름난 우리투자증권 용산지점의 김종석 부장은 “요즘 헐레벌떡 찾아와 대뜸 ‘펀드를 환매해 달라’는 고객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럴 만도 하다. 중국 증시만 해도 인플레 우려로 당국이 지급준비율을 올려 돈줄을 죄자 12일 지수 3000선이 깨졌다. 꼭 1년여 만에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이달 들어 러시아·브라질이 금리를 올린 데 이어 11일엔 인도마저 동참해 ‘브릭스’ 4개국이 인플레 불 끄기에 나섰다. 증시 호황을 주도한 나라들마저 먹구름이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김 부장은 “일부 자원부국을 빼면 최근의 주가 하락은 글로벌 증시의 전염병”이라며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려 해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인플레로 입은 투자 손실을 보전하려면 ‘천연자원 부국’에 돈을 넣는 펀드로 보완하는 게 그나마 낫다”고 했다. 역시 탈리오의 법칙을 응용해 악재를 호재로 돌리라는 얘기다. 그는 피델리티운용의 EMEA(동유럽+중동+아프리카) 펀드, 우리CS의 동유럽 펀드, 프랭클린의 MENA(중동+북아프리카) 펀드, JP모건의 중동&아프리카 펀드, 브라질·러시아 펀드 등을 꼽았다. 이런 자원부국 펀드엔 올 들어 1조원이 몰렸다.

하지만 투자지역은 꼼꼼히 뜯어봐야 한다. 기자는 지난 1월 중순 바닥권에서 EMEA 펀드에 들어갔다. 남아공에 많이 투자하지만 러시아 비중도 30%가량으로 높은 편이다. 그 덕에 지금까지 수익률은 6% 정도다. 그런데 당시 중동&아프리카 펀드에 가입한 친구는 요즘 투덜대기 일쑤다. 고유가로 돈을 많이 벌었을 줄 알았는데 수익률이 고작 2%가량이었다. 유가보다는 다른 원자재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남아공을 포함해 터키 등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자산컨설팅부 신긍호 부장은 ‘델타 헤징’이란 방패를 장착한 ‘금융공학펀드’를 추천했다. 주가가 오를 때 주식을 적게 가져가고, 떨어지면 많이 편입하는 ‘고점매도-저점매수’를 밑바탕으로, 파생상품 거래를 곁들여 위험을 피하는 펀드를 말한다. 동부투신의 ‘델타’시리즈 펀드가 대표적으로 주가가 40%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원금을 최대한 지키고, 일정 범위에서 오르내리면 최대 20%의 수익을 내는 구조다.

그는 KTB운용의 ‘액티브 자산배분’ 펀드도 추천했다. 보통 주식형 펀드는 투자자 돈의 90% 이상을 주식에 넣는다. 그런데 이 펀드는 시황에 따라 주식 비중을 50~80%로 탄력 있게 가져간다. 신 부장은 “운용사들이 이렇게 귀찮은 펀드는 잘 안 만든다”며 “리스크가 커질 때 쓸 만한 고객지향적 펀드”라고 했다.

펀드로 수익이 제법 났다면 현금성 자산으로 묻어두고 주가가 더 떨어질 때를 노렸다가 매수에 나서는 전략도 써볼 만하다. 한국도 주가수익비율(PER)이 11배로 낮아져 기대수익률(PER의 역수)은 9.2% 수준이다. 분명 예금보다 매력적인 수치다. 다만 주가의 의미 있는 반등을 확인하려면 유가 안정과 미 장기금리 상승(경기회복 신호) 같은 지표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대한민국 재테크사』란 책에서 인플레 때의 쓰라린 투자사를 정리한 교보증권 김대중 목동지점장은 “실물자산에 투자하라는 얘기를 하는데 사실 현재 인플레의 폭과 기간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안정성과 수익성을 겸비한 상품으로, 주가가 일정한 범위 안에 있으면 15% 안팎의 수익이 가능한 주가연계증권(ELS)도 괜찮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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