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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코드 뽑기’ 인사로 갈등 증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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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08면

유인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취임 직후 ‘코드 기관장 퇴진론’을 펴 논란을 일으켰다.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을 지목하면서 “끝까지 자리에 연연해 한다면 재임 기간 중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밖에 없다”며 퇴진을 압박했다. 이렇게 문화부에서 시작된 ‘코드 뽑기’의 불씨는 정부 각 부처로 번지며 새 정부 출범 초 물의를 빚었다. 공공기관의 공공성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인 기관장 임기제를 무시한 인사가 잇따르면서 사회 통합을 해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100일 만에 사의 표명한 ‘이명박 내각’의 실패학

유 장관의 코드 뽑기는 실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유 장관은 취임 초 김정길 전 대한체육회장의 면담 요청을 거절하는 한편, 3월 초 태릉선수촌 방문 당시엔 김 전 회장의 배석을 거부했다. 체육회와의 갈등은 사무총장 인선 문제로 골이 깊어지면서 급기야 베이징 올림픽을 50여 일 앞둔 4월 말 김 회장의 자진 사퇴로 이어졌다. 체육회장의 공백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달 초 벨기에에서 열린 ‘2013년 하계유니버시아드’ 개최국 선정에서 광주가 떨어졌다. 체육계에선 “힘을 합쳐도 모자라는 판에 내분을 일으켜 그동안 하계유니버시아드 유치에 투자한 80여억원만 날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문화부는 최근엔 예술단체장 인선 과정에서 문화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문화부는 지난달 “예술단체장 선임 방식을 공모제에서 추천제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공모제의 부작용을 보완하고자 새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새 제도의 운영 미숙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예술의전당 사장. 사장 추천위원회가 4명의 사장 후보를 추천했으나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 한용외 삼성사회봉사단 사장 등 3명이 개인 사유 등을 이유로 자진 사퇴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문화부는 당연히 추천위원회를 열고 추천 후보를 다시 선정해야 했으나 후보 중 유일하게 남은 김민 전 서울대 교수를 사장으로 내정해버렸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8일 한국연극협회·한국뮤지컬협회 등 9개 단체가 반대 성명을 냈다. 사장 선발 과정이 비상식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문화부는 이틀 뒤 김 교수의 내정을 철회하고 사장 선임을 원점으로 돌렸다.

국립오페라단장 선정도 내홍을 겪고 있다. 단장으로 내정된 이영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작곡과)가 13일 사퇴 의사를 밝힌 것. 역대 단장 등 성악인 20여 명이 “단장 추천위원 중 오페라 관련 성악인은 한 명도 없었다”며 “전문성이 없는 작곡가를 단장으로 선임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자 이 교수는 스스로 물러났다. 예술단체장을 뽑으면서 예술계 특유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형식적인 절차만 중시함으로써 문제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문화부가 국정홍보처로부터 국정 홍보 기능을 이관받았지만 ‘쇠고기 파문’과 관련해 대응을 제대로 못한 데 대해서도 질책의 목소리가 높다. 촛불 시위가 계속 확산하는데도 이렇다할 홍보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처럼 문화부가 도마에 자주 오르다 보니 유 장관에 대한 문화부 내부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직원들은 유 장관이 공식석상에 나설 때마다 “오늘은 말실수가 없어야 하는데…”라며 불안해 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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