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편집자 레터] ‘죽은 새 증후군’ 신선한 고해성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오래된 대학의 교수실은 어느 곳이나 죽은 냄새가 난다.”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의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49·분자생물학)가 그의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한 말입니다. 조교와 강사들이 교수의 눈치를 보며 잡무에 시달리는 대학의 전근대적인 계급구조를 꼬집은 것입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죽은새 증후군’을 경고했습니다. 성공해 이름을 날리고 존경받는 교수님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이라면서요.

‘죽은새 증후군’이란 겉으로는 “우아하게 날개를 펴고 창공을 날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 죽어 있는 것과 다름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자신의 일에 능숙해진 사람이 일 자체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자신이 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알리는’ 기술에 더 노련해지는 것이랍니다. 흔히 하는 말로 ‘포장술’만 늘고, 처음의 꿈과 호기심과 열정은 사그라진 상태인 것이죠. 인터뷰를 위해 얼마 전 신이치 교수를 만났을 때, 이 말이 후학들에게 주는 조언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그보다는 나 자신에게 당부하는 말에 더 가깝다”고 답했습니다.

지난주에 읽은 책 『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한티미디어)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저자인 한동대 이재영 교수가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대목입니다. 이 교수는 “학교의 공식적인 일(연구나 강의가 아닌 행정적인 일들)로 분주해 책상에 앉아 책이나 논문을 5분도 읽지 못하는 나날의 연속”을 보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3년간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이제부터 연구다” 하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언제든지 연구는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란 자만심이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꽉 막혀버린 거죠. 문제는 거기서부터입니다.

강의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학생들은 속일 수 있어도 넌 이미 끝났어”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답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다가와 “교수님 오늘 강의 정말 마음에 와닿았어요” 라는데, 그는 “고맙다” 말하고 돌아서며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고 합니다. “이제 교수라는 껍데기만 남은 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책을 인터뷰나 서평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런 얘기는 핵심적인 내용은 아니었기에 다 전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소한 일화들을 새삼 들추어낸 것은 이 증후군이 비단 교수들만 빠지는 함정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이치 교수는 책에서 과학 발전에 공헌한 수많은 ‘이름없는’ 영웅들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가 ‘죽은새’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은 유명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름없는 영웅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보통 사람들, 틈틈이 성찰하는 사람들, 이들이 이름없는 영웅들입니다. 

이은주 기자

Life&Style 섹션 '레인보우' 홈 가기 joins.com/rainbow
Life Me J-Style Art week& Book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