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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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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온 나라와 국민의 가슴을 붉게 물들였던 2002년 월드컵의 감격은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엄청난 몸값의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붙어 몸싸움을 벌여도 밀리지 않고, 그림 같은 골을 성공시키며 승승장구할 때, 뜨거운 감격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 감격은 온 국민의 가슴속에 숨겨둔 민족의 자부심을 용솟음치게 하여 드디어 세계가 놀랄 만한 아름다운 축구문화를 마음껏 꽃피우게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음악가의 수준은 단연 세계적이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연주자도 많고, 또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될 정도의 재주를 가진 새싹들도 많이 자라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음악 현장은 상대적으로 너무나 빈약하다. 아름다운 소리에 자연스럽게 매료되어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도, 가치있는 음악가로서의 삶을 위해 음악을 권유하는 부모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쓸모있는 음악가를 키워내려는 선생 또한 드물고, 음악을 즐기며 그 아름다움에 젖으려 하는 자연스러운 음악적 분위기를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공연시장 자체의 빈약성과 국내 음악계에 보내는 외면의 시선이라 하겠다. 많은 개런티를 주고 외국의 유명 연주자를 불러들이는 일에는 공을 들이면서 실상 그들의 연주가 어떠냐는 것은 관심 밖인 기획사의 만용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그런 부류의 연주에는 검소한 가장의 한 달 용돈에 가까운 값을 지불하면서 기립박수를 치는 예의를 자랑한다. 반면 국내 연주자의 연주는 ‘초대권도 주지 않는데 어찌 가겠냐’는 식의 관중의식은 종종 ‘초만원을 이뤘던 가짜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사태’를 빚어내기까지 하면서 나의 어깨를 처지게 하곤 한다. 막상 세워놓고 보니 세계 최고의 선수들에게 조금도 못 미칠 바 없었던 우리 선수들에게 과거 우리가 보냈던 무관심과 터무니없이 낮았던 몸값이 바로 우리 국내 음악인들의 현주소라 하면 어떨까 싶다.

긴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는 내 연주의 중심을 ‘기획 연주’에 두고 쉼 없이 달려 왔다. 작곡가·지휘자와 달리 연주자는 신체적 이유로 인해 자기의 최고 기량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우리나라 음악계에 가장 시급한 일이 바로 국내 공연계를 활성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음악은 한순간 가슴 졸이게 하는 루빈스타인의 연주나, 가끔 귀를 울리고 사라지는 몇 줄기 쇼팽의 선율이 아니라 세상의 많고많은 아름다움 속에서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 가꾸며 저마다의 향기를 드러내고 사는 삶 자체다. 이것을 전해주는 것이 곧 음악이고, 이러한 음악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할 사회적 책임을 상당 부분 우리 음악인이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관중을 끌어들여 차분히 알려주고 서서히 그 아름다움에 동화시켜 자연스러운 음악적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종종 우리의 이러한 피나는 노력이 참으로 역부족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그라운드에 모여드는 관중이 없고, 어떤 선수가 어떤 기량을 갖고 어떻게 뛰는지 알려 하지 않으며, 그들을 위한 후원이 없어 선수들이 직접 뛰고 경기를 운영하다 지쳐서 의기소침해지는 과거의 현실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상당한 국민적 관심과 기업의 후원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이웃 일본의 음악계와 굳이 비교하자면 민족성 자체부터 우리가 훨씬 음악적일 뿐 아니라 훨씬 진일보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러 번의 초청연주에서 돌아본 그들 음악계는 연주자와 관중이 참으로 신뢰하고 성의있는 자세로 만나고 있다고 느껴져 내심 많이 부러웠다.

월드컵의 감격은 K리그에 연일 신기록을 세우며 몰려가 격려하는 관중과 열심히 뛰는 선수들을 후원하는 나라 전체의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우리 음악계에도 이런 감격스러운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국내 음악계의 활성화로 성숙한 음악적 분위기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같이 온 나라가 아름답고 품위있게 물들여질 날을 기대해 본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