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e칼럼

세상에서 가장 비싼 똥, 그 맛이 참 좋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입에 담기 민망하고 음식에 붙이기엔 불경스러운 단어인 똥을 커피이름 앞에 붙이면 몸값이 확 오른다. 인도네시아의 고양이 커피, 예멘의 원숭이 커피, 베트남의 다람쥐 커피 얘기다. '커피 감별사'라는 애칭이 있는 이들은 잘 익은 커피열매만을 골라서 따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커피열매가 동물의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침과 위액 등에 의한 화학적 작용을 일으켜 '명품 커피'의 원두로 재탄생한다. 이른바 '똥커피'다.

원숭이커피와 다람쥐커피는 수입되고 있지 않지만 고양이커피(코피루왁, kopi luwak)는 최근에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토나커피(www.tonacoffee.com), 커피알라미드(www.alamid.co.kr)등에서 팔고 있다. 전세계 수확량이 연간 800kg일 정도로 귀하다. 한 잔에 5만원, 원두 100g당 130만원. 필자와 같은 일반인에게는 사치품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래도 그 만한 값어치가 있을 테니 언젠간 꼭 맛봐야지 하던 참에 ‘피피커피(02-335-0242, blog.naver.com/ppcoffee)’를 알게 됐다. 주인장이 필리핀에서 고양이(링틸이라 부른다)의 변을 공수해오고 직접 원두를 분리하고 로스팅해서 내려주는데, 그 덕에 한잔에 만원으로 맛 볼수 있다.

“지금은 딱딱하게 말라서 냄새가 전혀 안 나지만 채취한 직후엔 마르지 않아서 꽤 구릿한 똥 냄새가 나요. 똥이 마르기 전에 깨끗이 씻고 말리는 것을 반복해서 원두를 골라내야 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죠. 우리는 흔치 않아서 귀하게 여기지만 그곳 사람들은 정작 이걸 그리 애지중지 하지 않아요.”

주인장의 말을 듣고 보니 사람들이 한정판에 열을 올리는 것처럼 '똥커피'를 찾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엿강정 모양으로 단단하게 굳어있는 고양이의 배설물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커피가 나왔다. ‘드디어 이 맛을 보게 됐구나!’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정신을 집중 한 뒤 흑갈색의 커피에 코를 가까이 댔다. 강하지 않은 은은한 커피 향이 느껴졌다. 한 모금을 흘려 넣으니 숭늉 정도의 구수함과 커피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느껴지다 곧 깔끔한 부드러움으로 바뀌었다.

“맛이 어떤가요?” 주인장이 물어왔다. 최고의 맛으로 칭송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과연 이것이 동물의 배설물에서 나온 것인가 하는 감탄을 하기에는 충분한 맛이란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대답할까 잠시 머뭇거리는데 주인장이 웃어 보이며 “본인 입맛에 맛있는 커피가 가장 좋은 커피지요.”한다.

과연 그렇다. 귀한 커피라 한들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찌 그것이 일미(一味)겠는가, 천지에 널린 자판기커피라 한들 내 입맛에 맞기만 하면 진미(珍味)인 것을.

김은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