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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경제는 '先憂後樂' 자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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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온 나라가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 빠져 경제가 실종된 느낌이다. 이런 와중에도 수출이 호조를 보여 그나마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수출 증가세는 지난해 19.3%에서 올해는 더 확대돼 3월까지 40%에 달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추세가 연말까지 지속된다면 올해 수출은 1987년의 3저 대호황 당시 기록했던 36.2%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 76년 이래 최고의 증가율을 달성하게 된다.

*** IT호황.중국 특수 계속될까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위정자들은 중국 북송 때의 혁신적인 정치가이자 학자인 판중안(范仲俺)이 말한 바와 같이 '걱정할 일은 남보다 먼저 하고, 즐거운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기라'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은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앞날도 순탄하기만 한 것일까. 여기에 답하려면 최근의 수출호조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결론적으로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최근의 수출 증가세가 우리 제품의 경쟁력보다는 외부적 수출여건이 호의적으로 변한 데 상당부분 기인하기 때문이다.

최근 수출호조의 요인으로는 첫째로 세계경기의 회복세, 특히 정보기술(IT) 경기의 회복을 들 수 있다. IT 분야가 세계경기 회복을 주도함에 따라 우리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반도체.휴대전화.LCD 등의 수출은 큰 폭의 증가세를 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세계경기의 회복세가 향후에도 지속될 것인지, 그리고 경기회복의 속도가 유지될 것인가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둘째로, 중국 경제의 고성장에 따른 특수다. 중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9.1%였고,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8.9%에 달했다. 이에 따라 우리의 대중국 수출은 지난해 34.6%, 올 2월까지 47.8%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서조차 경기과열을 우려한 경제성장 속도조절론이 제기되고 있고, 중국의 세계시장 석권에 따른 국제사회의 중국 책임론 등을 감안할 때 중국 특수가 마냥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내수부진에 따른 국내업계의 수출확대 노력을 들 수 있다. 내수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자동차 내수판매는 지난 1월에 전년동기보다 41.1%, 2월에는 24.2% 급락했다. 업체들이 내수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 수출에 매진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밖에도 우리 수출에는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이미 1150원대를 위협하는 원화 환율은 경상수지 흑자와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투자자금 때문에 추가 절상이 불가피하다. 고공 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원유.고철.구리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도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 수출업계로서는 원가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또한 내년 1월 시행될 섬유쿼터제의 완전 폐지도 걱정이다. 미국 섬유제조업협회(ATMI)는 쿼터제 폐지시 미국 섬유시장에서만 중국의 독주에 따라 한국은 16억2000만달러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 기업 투자규제 재고해야

평범한 의사는 병이 생긴 후 치료하는 자이고, 최상의 의사는 병이 나기 전에 치료하는 자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정부가 5~10년 후 한국무역의 주춧돌이 될 10대 차세대 신성장 동력 산업에 대해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완화키로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차제에 대기업에 대한 투자규제 정책을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해 우리 수출을 이끄는 핵심 산업에 대한 투자 활성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과 함께 기업.근로자 등도 합심해 우리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군살을 제거하고 진정한 '몸짱 경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현오석 무역협회 무역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