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각 일괄 사의 표명 “청와대·정부 누구도 인사에서 자유롭지 못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승수 국무총리와 전 국무위원이 일괄사의를 표명한 10일 한 총리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이명박 정부가 출범 107일 만인 10일 내각 일괄사의 표명이란 백기를 내걸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전원이 사의를 밝힌 지 나흘 만이다. 40일째 계속된 촛불 민심이 새 정부의 무릎을 꿇게 했다. 여기에다 정두언 의원의 ‘측근 퇴진론’, 노동계 파업 움직임까지 더해져 국정 혼란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빠져드는 국면이다.

수렁을 탈출하기 위해선 대폭 물갈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대적 인사 쇄신을 예고했다. 그는 전날 정진석 추기경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인선 과정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도덕적 기준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었다”고 자성했다. 인사 실패를 스스로 처음 인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앞으로 도덕성과 업무 능력을 중심으로 개각 인선을 할 것이란 뜻”이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발언 직후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해임했다. 박 비서관은 인사 파동의 진원지로 비판받았던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다. 앞서 이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이날 조찬 회동에선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청와대에선 류 실장을 포함해 수석 비서관 절반 정도, 정부에선 4∼5개 부처 장관이 물러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승수 총리가 교체되면 개각 폭은 커진다. 여권에선 ‘박근혜 총리 카드’에 힘이 실리는 터다. 이를 바탕으로 청와대든 정부든 “어느 누구도 인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관측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문제는 총리 교체가 국정 공백의 장기화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총리 사표가 수리되면 정부조직법에 따라 기획재정부·교육과학기술부·외교통상부 장관 순으로 총리를 대신한다. 이들 장관 역시 교체 대상으로 거론되는 터다. 개원조차 하지 못한 18대 국회가 열린다 해도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하면 새 내각 인선을 마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총리가 새 장관을 제청하는 형식을 밟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각 총사퇴 자체의 후폭풍도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가족부 등 장관이 교체 1순위로 꼽히는 부처에선 벌써 그동안 추진했던 정책 시행 일정이 늦춰지고 있다고 한다. 교과부는 이달 중 추진하려던 학업성취도 결과를 포함한 학교 정보 공개와 교원평가제, 자율형 고교 신설 등 학교 다양화 프로젝트를 다음달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영어공교육 강화 방안도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복지부는 다음달부터 노인 장기요양보험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시행하려면 행정안전부와의 조율이 필요하지만 장관 공백으로 이어지면 부처 간 조율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내각이 일괄사의를 표명했지만 인사 쇄신 때 처리할 것이며, 당분간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장관들이 현직에서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각 수준의 전면 개각은 상정하기 어렵다”며 “인적 쇄신이 (쇠고기 파문) 상황을 정리하는 마지막 절차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각과 청와대의 일괄 사표를 받아 든 이 대통령은 나흘째 공식 일정 없이 인사 쇄신의 폭과 시기에 몰두했다. 성난 시위대는 이날 최대 규모 집회에서 “쇠고기 재협상”을 외쳤다. 야권은 이런 대통령을 향해 “조각 수준의 개각”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의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글=최상연·강홍준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인물기사 더 보기

▶Joins 인물정보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