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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 감산 결정 파장] 하반기 내수회복 기대에 찬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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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쿠웨이트 등 일부 회원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 발표했던 대로 감산 결정을 밀어붙이기로 함에 따라 고유가 시대가 불가피하게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부에선 유가(서부텍사스중질유 기준)가 심리적 지지선인 배럴당 40달러선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감산안이 2월 발표 내용을 재확인하는 것인 만큼 추가적인 유가 강세요인은 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심리적인 영향으로 단기적으로는 유가가 오를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OPEC 회원국들이 이번 결의를 100% 지킬 가능성도 희박하다. 현재 OPCE의 쿼터는 2450만배럴인 데 지금도 150만배럴 더 많은 2600만배럴(2월 기준)을 생산하고 있다.

◇OPEC 감산의 힘=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국제유가 상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지정학적 위험과 OPEC의 기습적 감산 발표였다. 최근 6개월간 국제유가(WTI 기준)는 6.6달러 상승했는데, 이 가운데 4.7달러는 지정학적 위험과 OPEC의 쿼터 축소와 같은 돌발변수로 인한 것이었다.

세계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원유 수요가 늘어난 점도 유가 상승의 한 원인이지만 그 영향력은 OPEC의 파워에는 훨씬 못 미쳤다. 세계경기 회복은 고작 0.8달러의 국제유가 인상 효과를 가져왔을 뿐이었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헤지펀드 등 투기 세력들이 원유 선물 투자에 나서면서 고유가 현상을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복영 부연구위원은 "최근 국제유가 상승은 일시적 파동이라기보다 2000년 이후 세계 석유시장의 환경과 국제 유가의 결정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늘어난 한국 경제의 짐=투자은행인 골드먼 삭스는 고유가로 인해 서방 선진 7개국(G7)의 경제성장률이 앞으로 9~12개월 동안 0.3%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경제가 이처럼 다시 어려워지면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은 덩달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성상 고유가는 일선 기업들에 곧바로 고통스러운 부담을 준다. 당장 항공업계만 해도 수백억달러의 추가적인 원가부담이 생길 판이다. 영업비 가운데 연료비 비중이 큰 국내 항공사들은 배럴당 1달러가 올라가면 연간 100억~300억달러의 원가를 더 부담해야 한다.

극심한 판매 부진에 빠져있는 자동차 업계는 고유가로 휘발유 가격이 오르면 신차 출시 효과 및 특소세 인하 효과가 날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고유가는 하반기 회복을 꿈꾸는 내수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다. 가뜩이나 니켈.석탄.철광석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나란히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판에 고유가마저 지속되면 물가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빠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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