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원조씨는 역시 성역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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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구속기소로 盧씨 부정축재.비자금사건의 검찰수사가 일단 마무리됐다.검찰이 5일 발표한 중간수사결과는 철저한 수사로 한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던 당초 약속에는크게 미흡하다는 느낌이다.특히 핵심부분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안된채 『계속 수사하겠다』고 미루고 있는데다 처리기준도 객관적인 잣대가 없어 형평을 잃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다.
盧씨 부정축재사건은 검찰이 밝힌대로 전직대통령을 구속한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이다.불법으로 조성한 자금 액수부터 천문학적인숫자였다.거기에 우리 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은 하나도 빼놓지않고 모두 관련됐으니 국내외의 시선이 집중될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검찰의 발표내용은 盧씨구속 당시에서 진전된 것이 별로없다.특히 이원조(李源祚).금진호(琴震鎬).김종인(金鍾仁)씨등盧씨의 비자금조성 3인방(幇)에 대한 수사결과가 그렇다.
이원조씨는 盧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보도진에『비자금 조성과정에 이원조씨가 관련된 부분이 기록에 나타나 있다』고 발설한 후에야 본격수사대상이 됐다.검찰수사착수 초기부터 李씨가 비자금조성의 주역으로 부각됐지만 盧씨를 구속 할 때까지도검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李씨에 대한 수사는 언급조차 꺼리고 있던 중이었다.이때문에 항간에는 李씨에 대한 수사가 어려울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던 것이다.
이들 3인방은 각각 철야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예상대로 한사람도 구속되지 않았다.특히 핵심인 李씨는 盧씨 구속영장 청구서류에 적시됐던 단 한차례 30억원을 盧씨에게 알선한 혐의밖에 밝혀지지 않았다.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이들 세명이 盧씨에게 조성해준 비자금은 모두 238억여원(李씨 30억원,琴씨 148억9,600만원,金씨 60억원)으로 전체 비자금의 5%도 안된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누가 모았다는 것인가.
비자금 3인방에 대한 검찰수사는 아무리봐도 허술하다.도대체 무엇때문에 이처럼 미흡한 부분을 남겨 40여일간 온힘을 기울인수사에 먹칠을 하고,검찰공신력을 훼손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우리 나라 최고의 수사기관인 대검중앙수사■가 손을 못대는 수사의성역이 아직도 남아있단 말인가.
물론 이들이 불구속기소됐으니 처벌받을 가능성은 있다.그러나 이 정도의 혐의내용은 자칫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결과가 돼 이번 검찰수사가 오히려 앞으로 진실을 올바로 밝히는데 장애가 될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비자금사용처에 대한 발표내용도 꿰어맞춘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사용처 가운데 가장 큰 액수인 1,400억원을 13,14대총선지원자금 각각 700억원씩이라고 뭉뚱그려놓은 것도 선명치 않다.또 집권여당 총재로서 매월 10억원씩 지원 했다는 당비(黨費)의 출처도 우선 궁금하다.
이밖에 정치자금 유입여부나 그 규모를 밝히지 못한 것도 아쉽다.盧씨의 비자금사건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비자금 자체보다 자금의 정치권 유입부분이 오히려 관심의 핵으로 떠올랐었다.특히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 총재가 20억원을 받았다고 밝히는 바람에다른 사람의 정치자금,특히 민자당 대선자금에 대해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았던가.
정치자금 부분뿐만 아니라 스위스은행의 비밀계좌설등 盧씨의 은닉재산 부분도 철저히 밝혀야 했지만 기대할만한 내용이 없다.이미 스위스 현지 신문등에는 盧씨의 비밀계좌 예금규모가 수천억원등이라고 보도되고 있으니 보다 신속한 수사를 했어 야 옳았다.
만일 盧씨가 해외에 많은 재산을 도피시킨게 사실이라면 국민들의감정이 형언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바뀌며 검찰수사에도 큰 영향을줄 것이 아니겠는가.
피의자의 구속기소는 곧 수사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대형사건 처리관례였다.그러나 검찰은 구속기소후에도 盧씨의 해외 은닉재산여부등 수사미진 부분을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다짐하고 있다.역사에 족적을 남길 사건인만큼 한점 의혹이나 궁금증을 남기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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