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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총리, 대학생들과 ‘쇠고기·촛불 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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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한승수 국무총리와 대학생과의 시국토론회’가 6일 서울 연세대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 한 총리가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변선구 기자]

한승수 국무총리가 6일 대학생들과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놓고 시국토론을 했다. 이날 토론은 전국 32개 대학 총학생회의 요청을 한 총리가 받아들여 이뤄졌다.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송지헌 아나운서 사회로 2시간15분간 벌어진 이날 토론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 총학생회장들은 “정부가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한 총리는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정부의 진심을 믿어 달라”며 공세를 피해 갔다.

◇팽팽했던 135분 토론=토론이 시작되자마자 대학생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성치훈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지난 주말 촛불시위에 참가했을 때 시민들이 물대포를 쏘지 말라고 그렇게 ‘요청’해도 경찰은 그냥 쐈다”고 한 총리를 다그쳤다. 그는 “정부가 미국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입 중지를 ‘요청’했다는데, 미국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수출할 게 뻔하다”고 비난했다.

재협상 요구도 빗발쳤다. 강동호 제주대 총학생회장은 “정부는 잘못된 협상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려고만 하고 있다”며 “국민의 요구대로 즉시 재협상에 나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오철 중부대 총학생회장은 “물건을 사는 사람은 우린데 왜 파는 사람 눈치를 봐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오동국 동서대 총학생회장도 “국민이 안 된다는데 미친 소를 꼭 수입해야 하느냐.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냐”고 지적했다. 정수환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경찰의 무차별 진압으로 시민들이 다쳤다”며 “국민을 우롱하고 얕보는 게 진정 섬기는 정부가 할 일이냐”고 따졌다.

한 총리도 각오하고 나온 듯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는 “재협상을 하려면 기존의 모든 협상을 파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한·미 간의 신뢰 관계가 깨질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도 크게 손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총리는 “30개월 이상은 수입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며 이를 위해 재협상과 똑같은 내용의 ‘재협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산 수입 소의 95%는 30개월 미만인데, 미국도 5%에 불과한 30개월 이상 소 때문에 95%를 희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자 김세희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은 “5%라도 위험하면 막아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 아니냐”고 곧바로 반박했다. 장경태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은 “액셀러레이터만 작동하고 브레이크는 말을 듣지 않는다면 폐차 처분해야 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이와 같다”고 주장했다.

방청석에서도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인천에서 토론을 보러 왔다는 한 대학생은 “정부의 높으신 분들은 비싼 한우 꽃등심만 드시고 돈도 잘 못 버는 국민은 싼 미국산 쇠고기만 먹으라는 태도에 국민은 기막혀 한다”며 “정부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비판했다. 그는 “경찰이 시민들의 청와대행을 막고 있는데, 얼마 전 개통한 청와대행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 허락해 줄 거냐”고 물었다.

고려대 여학생도 “이명박 대통령이 대학 선배인데, 요즘처럼 부끄러울 때가 없다”며 “촛불시위에 대해 정부가 배후 운운하는데 우리는 이 대통령이 배후라고 감히 말한다”고 해 대학생들의 박수를 받았다.

토론은 끝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마무리 발언에 나선 김윤권 강원대 총학생회장은 “많이 준비해 왔는데 총리 발언은 한 달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 무성의한 답변에 너무나 실망했다”며 “오늘 토론으로 촛불시위가 더욱 활성화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잔뜩 굳어진 얼굴로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고만 말한 뒤 자리를 떴다.

◇토론장 주변도 긴장감=토론장 주변은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습시위나 달걀 투척 등 뜻밖의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1991년 6월 민주화 시위 때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가 한국외국어대를 방문했다가 학생들에게서 밀가루와 달걀 세례를 받은 뒤 정국이 급반전됐던 점도 주최 측을 긴장시킨 요인이었다.

한 총리가 행사장에 들어선 직후 연세대생 6~7명이 ‘어청수를 구속하고 이명박은 물러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사장 뒤쪽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 순간 “토론회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시위대는 별다른 충돌 없이 5분 뒤 자진 해산했다.

글=박신홍·김진경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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