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중국작가가 본 ‘타락한 욕망의 종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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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사십일포 1,2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문학과지성사, 384∼386쪽, 각 1만1000원

모옌(사진)은 소설가라기보다 차라리 이야기꾼이다. 모옌은 기이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세상과 별종의 인간들에 대해 구술하는데 남다른 재능을 가진 작가다. 그의 작품을 대하는 우리는 소설의 독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청자다. 모옌 문학의 개성으로,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모옌의 신작 『사십일포(四十一<70AE>)』도 그런 이야기 계보에 서 있는 작품이다.

『사십일포』는 오직 돈을 향해 질주하면서 지상에서 가장 기형적이고 변태적인 욕망으로 들끓고 있는 오늘날 중국 사회의 타락한 인간군상과 욕망의 축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90년대 중국 농촌이다. 하지만 이 마을은 그야말로 무늬만 농촌이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어리석은 짓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좋은 돈벌이가 있어서다. 물을 먹여 고기를 도축하는 것이다. 동네 촌장을 필두로 온 동네 사람들이 이 일에 종사하고 물을 먹여 도살하는 육가공 전문 기업을 동네에 차려서, 떼돈을 번다. 이 돈벌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협잡과 사기와 부정부패, 다툼 같은 기이하고 황당하고, 어찌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정신적 성장이 열 살에 멈춘 주인공이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면서 구술한다.

이야기를 구술하는 주인공은 10년 전에는 고기에 걸신들린 아이, 동네에서 고기를 제일 잘 먹는 아이였다. 이 아이가 고기에 걸신이 들렸던 것은 아버지가 동네 다른 여자가 눈이 맞아 집을 나간 뒤로 어머니가 쓰레기 줍는 것으로 가정을 챙기며 고기를 전혀 사 주지 않던 금욕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기에 대한 금욕의 시대는 아버지가 돌아오면서 끝나고 아이는 이제 고기에 걸신이 들리게 된다.

나이보다 영악하고 되바라지고, 조숙한 아이인 주인공은 고기와 대화를 나누고 영혼까지 교감하는 고기 신이 되고, 고기 먹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가 하면, 가축에게 효과적으로 많은 물을 먹이는 기발한 기계까지 설계한다.

그런 고기 대왕이었던 아이가 10년이 지난 지금은 고기를 끊고 불가에 귀의하려 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촌장과 어머니의 부정한 관계를 안 아버지가 도끼로 어머니를 내리쳐 살해한 뒤 감옥에 간다. 주인공만큼 고기를 밝히던 여동생은 고기에 들어 있던 독소에 중독이 돼 죽는다. 주인공 아이는 촌장에게, 세상에게 복수를 위해 대포 41발을 날린다. 대포는 고기 공장을 비롯한 온 동네를 차례차례 날려 버리고, 마지막에 촌장의 몸을 두 동강 낸다. 결국, 고기 때문에 다들 망했다.

마오쩌뚱 시대 중국은 금욕의 시대였다. 지금 중국은 지상 어느 곳보다 욕망의 해방구다. 금욕의 시대에 대한 반동 때문에 더욱 그렇다. 주인공이 고기에 대한 금욕의 시기를 지나 고기에 걸신이 들리는 것은 중국 역사에 대한 상징이자, 중국의 오늘에 대한 은유이다.

소설에서 고기에 걸신들린 주인공의 욕망은 41발의 대포와 함께 사라지고, 주인공은 득도의 길을 가지만, 소설 밖의 중국 현실도 주인공처럼 고기에 대한 탐욕에서, 광포한 욕망의 질주에서 벗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소설을 덮고 나니 착잡하다.

이욱연<서강대 중국문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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