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지식의 힘은 한권의 노트에서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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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
이재영 지음, 한티미디어,
312쪽, 1만5000원

참 독특한 책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대담하게도 ‘종이와 연필’ 예찬론을 펴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웬 노트인가? 멀티 시대에 웬 모노인가? 디지털 시대에 어인 아날로그인가?”(99쪽) 지은이는 이 책을 쓰면서 이런 반응이 나올 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 권의 아날로그 노트’에 “비밀이 있고, 힘이 있고, 자신이 있고 미래가 있고 우리의 진정한 삶이 있다”고 역설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원자핵공학을 전공한 한동대 이재영 교수의 소신있는 일탈이 선사한, 신선하고 흥미로운 ‘노트 예찬론’이다.

저자는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노트’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목적 없이 인터넷을 항해하며 길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손쉽고 간략한 문자입력과 전송, 소멸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한 ‘참을 수 없는 가벼운 글쓰기’가 언어를 혼란시키고, 깊은 생각을 방해한다.”(55쪽) 따라서 저자는 우리가 정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자기만의 노트’를 마련하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노트’란 연필을 손에 쥐고 공책에 글을 적는 행위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만의 지식경영을 위한 ‘도구’이자 그 ‘과정’을 의미한다.

그가 말하는 ‘끄적거림’의 힘은 어떤 것일까. 시간이 지나도 생각하고 고민한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속성(연속성)으로 우리는 쉽게 사고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고(몰입의 도구), 지난 시간을 반추하게 해준다(행복의 도구). 한 가지 목적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더욱 열정적으로 만들어주고, 이 사소한 기록의 과정을 통해 지난 시간 동안 축적해온 지식을 융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언뜻 보면 한 권의 자기계발서 같아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철학자의 시선을 가진 한 과학자가 진솔하고 깊이 있게 써내려간 에세이, 그 이상의 책에 가깝다. 해박한 지식으로 과학은 물론 사회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도 저자는 자신의 멘토 이시(石井)선생의 노트 이야기부터 자신의 정신적 방황 등 개인적 경험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덕분에 ‘작은 차이’를 중시하는 그의 삶의 철학이, 사회의 혁신에 대한 신념까지 그대로 읽힌다. 저자의 이같은 글쓰기는 그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노트’ 덕분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자기만의 ‘스프링 노트’ 한 권. 그립지만, 우리는 참 쉽고도 어려운 주문을 하나 더 만났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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