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미8군 사령관들

중앙일보

입력 2008.06.05 03:02

업데이트 2008.06.0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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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광진구에 있는 워커힐 호텔의 ‘워커힐’이란 이름은 월턴 H 워커 미 8군사령관에게서 유래한다.

한국전쟁 당시 워커 사령관은 “미 8군이 북한군을 몰아낼 때까지 한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50년 12월 그는 의정부 북방 전선을 시찰하러 지프를 타고 가던 중 맞은편에서 오던 트럭과 충돌해 사망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61년 서울 광진구에 미군을 위한 위락시설을 만들기로 하고 이곳의 지명을 ‘워커힐’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외아들을 한국에 바친 미 8군사령관도 있다. 워커 사령관과 리지웨이 사령관에 이어 부임한 제임스 어워드 밴플리트 8군사령관(51~53년 한국 근무)은 자신뿐 아니라 아들 지미 밴플리트 중위도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러나 52년 4월 밴플리트 중위는 폭격기를 몰고 북한 쪽으로 비행하다 실종됐다. 그해 부활절 밴플리트 사령관은 한국전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들에게 “ 벗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다”는 전문을 보냈다. 그는 전역 후에도 사재를 털어 한국 육사에 도서관을 기증했다. 육사 교정엔 그래서 그의 동상이 서 있다. 그는 57년 뉴욕에서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한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창설하기도 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매년 그의 이름을 딴 밴플리트상을 한·미 관계 증진에 기여한 인사에게 수여한다.

존 A 위컴 미 8군사령관(79~82년 한국 근무)은 ‘들쥐 발언’으로 한국에 각인된 사령관이었다. 그는 80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정권을 잡자 “한국민의 국민성은 들쥐(레밍)와 같아 누가 지도자가 되든 그 지도자를 따라간다. 한국민에게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 게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76년 8월 18일 발생한 ‘8·18 도끼만행사건’ 때 리처드 스틸웰 미 8군사령관(73~76년 한국 근무)은 한국전쟁 이후에 최고의 경계태세였던 ‘데프콘3’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사흘 뒤인 21일 오전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어 버렸다. 스틸웰 사령관은 당시 미루나무를 베던 중 교전 사태가 발생하면 일대의 미군을 북진시키는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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