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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야구단 만들어 진짜 수퍼스타 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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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 삼미슈퍼스타즈 투수 감사용 씨가 투구 시범을 보이고 있다. 입고 있는 유니폼은 2004년 개봉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기념으로 받은 것이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도, 우박이 내리쳐도, 태양은 다시 뜹니다.”

‘수퍼스타’ 감사용(52)을 만난 날,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며 그가 던진 말이다. 프로야구 원년이었던 1982년, 유일한 직장인 출신 선수로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했지만 ‘패전 전문투수’란 이름으로 불리며 1승15패의 성적으로 물러났던 감사용.

그의 지난 삶은 먹구름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인생의 태양이 아직 뜨지 않았을 뿐”이라고 여긴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해가 뜰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최근에 펴낸 자서전의 제목도 『꿈과 도전 그리고 인생 이야기』(대경북스)다.

“‘인간 감사용’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바보 같지만 우직하게 꿈을 향해 한 길을 가는 인생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15개월 걸려 원고지에 꾹꾹 눌러 쓴 글에는 그의 경남 진해중학교에서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담겨있다.

지금은 경남 진해에서 장애인 야구단 창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몸은 조금 불편해도 야구를 통해 꿈을 계속 꾸게 해주고 싶었어요. 가을쯤 창단이 목표입니다.”

그는 앞으로 몽골 등에서 야구를 통해 기독교 전도 활동을 하는 꿈도 꾸고 있다.

하지만 생활이 녹록하진 않다. 간간이 대학 등지에서 특강을 해서 얻는 수입으로 월셋방에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 식당을 운영하며 건실한 사업가로 자리잡기도 했지만 외환위기 때 주식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이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죠. 지나가버린 일들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앞으로 한발한발 나아갈 뿐이죠.”

2004년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개봉 이후, 한줄기 빛이 비치는 듯도 했다. 국제디지털대학 야구팀에서 꿈에 그리던 감독 직을 맡았던 것.

“제가 이끄는 팀이 1승을 올렸을 때, 가슴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어찌나 기뻤던지…”

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그는 또 ‘1승 감독’에 머물고 말았다. 팀이 지난해 3월 해체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야구를 손에서 놓을 수 없다”라고 했다.

“나는 야구만큼 소중한 게 없어요. 결과가 반드시 좋진 않더라도, 내가 나에게 떳떳한 게 중요하죠.”

그런 그에게 아들 감인호(24)군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저는 1승 투수밖에 못했지만, 아들만큼은 10승, 아니 그 이상을 하게 하고 싶었어요.”

매일 새벽 같이 운동을 했지만, 세상은 또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들의 공에서 힘이 느껴질 무렵, 아들 무릎에 피멍이 든 것을 발견했다. 부상으로 인해 뼈가 부러진 것. 결국 아들도, 아버지도 꿈을 접어야 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손자한테 시켜야죠. 하하.”

그는 세상이 그를 ‘패전전문투수’로만 기억하는 것에 불만이다.

“나도 사람인데, ‘패전전문투수’라고 불리는 게 달갑지 않죠. 사실 패전처리 역할은 피할 수도 있었어요. 패전처리 투수가 필요할 때면 동료 선수들은 다들 감독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러 나가거나 화장실을 가곤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그냥 열심히, 묵묵히 할 뿐이었죠.”

하지만 마운드로 향하는 길엔 사실 불만도 많았단다.

“‘왜 또 내가 이걸 해야 하나’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어요. 하지만 막상 투수판만 밟으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어요. 그저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죠.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요. 누구나 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묵묵히 해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수퍼스타 아니겠습니까.”

동생 감정자(51)씨는 그런 오빠가 못내 안타깝다.

“그냥 야구 그만두라고 하고 싶죠. 다른 일 찾아보라고 하고 싶고. 그래도 막무가내에요.”

그러자 감씨는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좋은 걸 어떻게 합니까. 그냥 우직하게 밀고 나가야죠. 난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어쩔 수 없죠. 이게 나인 걸요. 나에겐 자부심이 있습니다.”

인터뷰 뒤 그가 건넨 사인 볼엔 “꿈을 이루자”라는 다섯 글자가 깊게 박혀 있었다. 그는 지금도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모자와 글러브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진해=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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