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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장 개조 이영미술관의 이유있는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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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乃古) 박생광(1904~85) 화백 작품의 최대 소장처로 유명한 이영미술관(ICAM)이 2일 다시 문을 열었다. 신축 도로가 기존의 미술관 부지를 통과하면서 문을 닫은 지 약 1년만이다. 미술관은 수원인터체인지 방향으로 500m 떨어진 영통신시가지 입구에 새롭게 자리잡았다.

김이환 이영미술관장

이영미술관이 미술계로부터 주목받았던 이유는 2001년 개관 당시 돼지우리를 개조해 고급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사실 말고도 몇 가지 더 있었다. 박생광과 전혁림 등 미술계의 대가들 작품을 국내 최대 규모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생광 화백은 수묵화가 주류를 이뤘던 시기 ‘무녀’‘토함산 일출’‘시왕도’ 등 우리 민족의 화려한 색감을 토속적으로 표현해 ‘민족혼의 화가’로 불리고 있다. 공무원ㆍ기업인 출신의 미술애호가인 김이환(74)관장은 수유리의 옹색한 집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말년을 보내던 화가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냈고 82세로 숨진 박 화백은 뜨거운 예술혼으로 말년을 불태웠다. 프랑스 화단은 그를 가리켜 ‘동양의 샤갈’이라 평했다.

‘통영의 화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전혁림(93) 역시 이영미술관의 대표적인 소장작가 중 한 명이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조형을 토대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그는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아낸 몇 안 남은 원로 대가로 꼽히고 있다. 이영미술관은 전혁림의 ‘구십, 아직은 젊다’전을 2005년 작가의 고향인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기도 했다.

전혁림 '새 만다라(曼茶邏)'

박생광 '토암산의 해돋이' (140 X 135 cm)

2일 열린 신축ㆍ재개관 기념식은 떠들썩한 잔칫집 분위기였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서정석 용인시장 등 각층 300여명의 인사가 참석했고 인간문화재 하용부의 밀양 북춤과 장사익의 소리판이 흥을 돋웠다. 미술관 측은 이날 박생광의 대표작 ‘명성황후’‘토암산의 해돋이’‘무녀’ 등을 다시 공개했다. 전혁림의 초대형 작품‘새 만다라’(20×5m)도 공개됐다.

새 출발을 선언한 이영미술관은 이날 다시 한번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구세대의 작품 전시로 끝나지 않고 현대미술까지 아우르겠다는 것이다. 이날 전시에는 현대미술의 중요 매체로 등장한 비디오 영상 미술과 사진, 설치 작품 등이 함께 공개됐다. 박생광의 작품세계를 미디어적인 언어로 재해석한 젊은 작가 김현철(36)의 ‘108번의 삶과 죽음’과 뉴욕 ‘On-Air 프로젝트’ 시리즈로 유명한 사진작가 김아타(53) 의 작품 등이 그것이다. 김이환 관장은 “뉴미디어 설치 미술을 통해 현대 미술관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새로운 화두는 10대 청소년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개관식에 참석한 창현고 미술부 김다혜(18)양은 “비디오아트적인 작품이 새로 나와 흥미롭다”며 “미술관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늘 새로운 구상으로 한발 앞서가는 이영미술관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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