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정국-정치태풍 휘말린 憲裁권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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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헌법소원을 냈던 광주민주의거피해자들이 사전에 새어나온 결정선고내용에 자극,선고 하루전에 헌법소원을 취하하는 국내 재판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짐에따라 최고 사법기관이라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 권위가 크게 훼손되게됐다.이들의 소원제기로 약4개월동안 여덟번에 걸쳐 평의를 마치고 선고기일까지 발표했던 헌재(憲裁)로서는 선고를 할 수 없게됐다. 헌재는 물론 지난 24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특별법제정방침을 선언,검찰의 불기소처분을 취소하더라도 이미 김은 한번 빠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특별법제정이전에 검찰의 불기소결정은 잘못됐다는 역사적인 결정을 남긴다는 자세로 평의에 박차를 가해 선고기일도 앞당겨 잡았으나 이것마저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여당과 사건관계자들을 탓하기 전에 헌재의 자업자득(自業自得)측면이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선고하기전에 판결내용이 외부에 알려진데 대해 헌재로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동년(鄭東年)씨등의 소원취하는 언론보도를 통해 헌재가 공소시효를 80년8월16일 최규하(崔圭夏)전대통령 하야시점으로 판단할 것으로 알려진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헌재측은 鄭씨등 광주민주의거 피해자 360명의 대리인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소속 변호사들을 상대로 언론보도내용이결정내용과 다르다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또한 결정내용을 사전에 알려주는 행위이긴 마찬가지다.재판에 앞서 재판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은 법관의 양심에 속하는 문제다.
더군다나 정부의 특별법제정방침도 헌재가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취소할 것이란 결정내용이 정부쪽에 미리 알려져 서둘러 발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참이다.
이밖에 헌재는 지난 7월24일 헌법소원이 제기됐음에도 이제껏선고를 내리지 못한 절차지연의 책임도 지적받고 있다.
정부의 특별법제정방침이 나오기 전에 선고를 내렸으면 특별법제정이라는 고육책도 방지할 수 있고 당사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권과 소원을 낸 사람들이 사전에 파악한 결정내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자 소원을 취하하는 편법도『재판의 신성함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88년9월 문을 연 이후 2,597건의 사건을 접수,82건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는등 자리를 잡아가던 최고 사법기관으로선 중대한 시련을 겪게됐다.
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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