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정국-12.12피해자 근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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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씨등 정치군인들이 자행한「12.12사건」의 피해자는 모든 국민이다.그러나 당시 사건현장에서궂은 일을 당하고 정치군인들에게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수난을 겪은 직.간접적인 피해자들도 적지않다.
그 피해자들은 5.18특별법 제정소식에 한결같이『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며 목메어했다.
직접적인 피해자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정승화(鄭昇和.69)당시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과 장태완(張泰玩.64)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정승화씨는 서울대치동 쌍용아파트에 살고 있다.鄭씨는『진실은 감추려고 해서 감춰지는게 아니다』며『5.18특별법제정으로왜곡됐던 역사가 바로잡혀져 다시는 그같은 불행하고 참담한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79년 12.12 그날 全씨측 합수부에 의해 참모총장공관에서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강제연행돼 80년3월 징역10년을 선고받았다.80년 6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사면복권은 됐지만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최대의 수모를 당했다.육군대장 계급을 회복한 것은 88년 11월.
독서와 휴식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는 鄭씨는 그러나『5.18사태를 미리 막지못한 자책감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장태완씨는 94년3월 재향군인회 제27대 회장으로 뽑혀 군문에서 못다한 한(恨)을 다소나마 풀며(?)살고 있다.
張씨는『24일 지방재향군인회 모임에 참석한 뒤 서울로 돌아오다 라디오를 통해 5.18특별법제정소식을 들었다』며『복받쳐오르는 감회에 한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했다.
이들외에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갖은 수모를 당했거나 정치군인들의 거세작업으로 청춘을 묻은 푸른 군복을 벗어야했던 간접적인 피해자 32명도 두눈을 부릅뜨고 살아있다.이들은 이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지켜보는 증인이 됐다.
그들 가운데 김진기(金晋基.63)당시 육본헌병감은 경기도안양시 평촌동 샘마을아파트에 살고있다.가훈을 신의(信義)로,생활신조를 아예 사필귀정으로 삼고 살아온 金씨는 한국토지개발공사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1주일에 한두번 출근한다.金씨의 한 가족은『매일 오전9시쯤 집을 나서 업무도 보고,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만나고,등산도 종종 한다』며『26일 베트남으로 출장가 1주일뒤돌아온다』고 전했다.
비록 저승에 있지만 할말이 많은 사람들도 있다.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병주(鄭柄宙)장군과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金五郎)소령등이 그들.정병주씨는 88년 10월 가출해 이듬해3월 경기도양주군 군부대안 탄약고근처 야산에서 목맨 시 체로 발견됐다.독실한 가톨릭신도였던 그의 죽음은 아직도 의혹에 싸여있다.
김오랑씨는 12.12당시 특전사령부를 공격한 정치군인들에게 대항하다 총에 맞아 숨졌으며 그의 부인 백영옥씨도 91년 6월자신이 살던 건물4층 베란다에서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르고말았다.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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