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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중간평가 연기 89년 비밀각서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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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89년 3월 노태우 대통령이 중간평가를 실시하지 않는 대신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한 정호용씨 등을 공직에서 사퇴시키는 내용을 담은 비밀각서를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 김윤환(2003년 작고) 총무와 제1야당인 평민당 김원기 총무가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원기(사진) 전 국회의장은 평민당 총무 시절인 89년 3월 21일 당시 신라호텔에서 김윤환 총무와 단독 면담을 한 뒤 합의로 작성한 비밀각서 사본을 19년 만인 1일 본지 기자에게 처음 공개했다.

김윤환 총무의 친필로 쓰인 이 각서는 A4 용지 6장 분량이며 ▶광주민주화운동 문제 처리 ▶5공 비리 문제 처리 ▶80년 언론 통폐합 및 해직 관계자 처리 ▶전직 대통령 증언 문제 처리 ▶민주화 문제 ▶지자제(지방자치제) 실시 ▶공무원노조 등 7개 항으로 돼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각서가 쓰이기 하루 전인 20일 대국민담화에서 대선 공약인 중간평가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공개한 각서의 사본. ‘중간평가를 실시할 시기가 아니라는데 합의’‘허문도, 이상재씨 중 1인 사법처리’ ‘정호용씨는 공직에서 물러나고…’등의 문구가 선명하다. 각서는 고 김윤환 의원이 썼다고 김 전 의장은 말했다.

각서에는 “양당은 우리 정국이 당면한 중대 과업에 대처하기 위해 현시점은 중간평가를 실시할 시기가 아니라는 데 합의한다”고 한 뒤 “양당은 5공 핵심 인사의 공직 사퇴와 전(두환)·최(규하) 전직 대통령의 국회 증언 등을 조속한 시일 내 실시한다”고 돼 있다. 또 “이상의 조치가 처리 또는 실현이 합의됐을 때 (국회의) 광주 및 5공비리특위는 위증자에 대한 고발조치를 한 후 특위 임무를 종결하고 5공 청산 문제는 완결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적었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정호용씨는 공직에서 물러나고 이희성(전 계엄사령관)씨는 공개사과문 발표”를, 80년 언론 통폐합 조치와 관련해 “허문도·이상재씨 중 1인에 대한 사법 처리”를, 5공 비리 문제와 관련해 “이원조씨의 공직 사퇴”를 명기하는 등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조목조목 나열돼 있다. “민주정의당을 대표하여 김윤환, 평화민주당을 대표하여 김원기”라고 쓰고 각각 친필로 사인한 이 각서에 대해 김원기 전 의장은 “살생부에 가까운 내용들이 포함돼 그동안 각서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며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이 각서의 존재에 대해선 당시 야당에서도 김대중 총재와 나밖에 몰랐다”고 했다.

박승희·김경진 기자

만난 사람=박승희 정치부문 차장

각서 전문

우리는 현 시점이 자칫하면 6.29선언과 4.26 총선에 의하여 이루어진,민주주의에의 귀중한 국민적 재산이 파탄에 직면할 위기에 있다고 보며 국가 운명이 파국 일로에 치달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같이 한다.아울러 우리는 이제 우리 국민의 역량이 평화적이고 합헌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성취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본다. 이 때를 당하여 국가운명에 대해서 제1차적 책임 있는 우리 양당은 두려운 책임감과 확고한 신념 아래 오늘의 난국을 다음과 같이 처리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이 각서를 작성하는 바이다.

1989.3.21

양당은 이른 바 5공 핵심인사의 공직사퇴와 전최 전직대통령의 국회 증언 등 5공청산과 민주화 추진문제를 지난 3월10일에 있은 노태우김대중 회담의 합의정신에 입각하여 이를 조속한 시일내 실시한다.

이상의 조치가 처리 또는 실현이 합의되었을 때는 광주 및 5공비리특위는 과감히 특위의 조치보고서를 작성하고 이의 국회 제출과 더불어 위증자에 대한 고발조치를 한 후 상기 양 특위의 임무를 종결하고 5공천산문제는 완결된 것으로 간주한다.

양당은 긴박한 국가적 난문제의 해결과 지자제 연내 실시 등 우리 정국이 당면한 중대과업에 대처하기 위하여 깊이 숙고한 끝에 현 시점은 중간평가를 실시할 시기가 아니라는데 합의한다.

1989.3.21

민주정의당을 대표하여 김윤환
평화민주당을 대표하며 김원기

5공청산·광주민주화운동문제의 처리

특별법을 제정하여 광주시민의 명예회복과 유가족 보상자 기타 필요한 사람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한다.
정호용씨는 공직에서 물어나고 이희성씨는 공개 사과문 발표.
정호용 소준열 이희성씨 등에 대한 위증고발은 국회 광주특위에 처리하도록 한다.
상무대 부지 전부를 광주시에 무상 인도하고 정부는 여기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공원 조성 등 필요한 사항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광주문제가 마무리 짓는 시점에서 정부와 전두환씨는 국민 앞에 사과 유감의 뜻을 밝힌다.

5공비리문제의 처리

이원조씨의 공직 사퇴
기타 5공비리 특위에 고발된 자의 처리

80년 언론통폐합 및 해직관계자 처리
허문도,이상재 씨 중 1인에 대한 사법 처리

전직대통령 증언문제 처리

특위는 광주민주화 문제와 5공비리에 대해서 사전에 문서로써 질문서를 작성하여 최전 양씨에게 발송한다.
전직대통령이 지정된 날짜에 국회의 비공개회의(1회 한)에 나와서 증언하도록 노력한다.
증언 중 미진한 사항이 있으면 총무단회의의 합의에 의하여 각당 1인씩 보충질문을 실시하되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존중한다.

민주화문제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악법의 개폐문제는 여야 각당이 성의를 다하여 이행한다
여야는 5월까지 임시국회를 소집하여 이를 실천에 옮긴다

지자제 실시

서울특별시,직할시 각 도의 의회의원선거는 89년말까지 실시한다.
전항 지역의 자치단체장의 선거는 90년말까지 실시토록 하고 여야간 협상을 벌인다.
89년 중이라도 합의된 시도에 대해서는 자치단체장의 선거를 시범적으로 실시한다
기초 자치단체의 의회와 장의 선거는 91년말까지 실시하되 여야 협상에 따라 앞당길 수 있다.

공무원 노조

공무원의 노조 결성을 하도록 하기위하여 여야간에 구체적 협의를 진행한다.
공무원 노조 결성의 단계적 허용 실시에는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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