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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작가 윤후명.박영한 신작 연애소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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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리는 하나의 심연에서 솟아올라 또다른 심연으로 사라져 간다.이 심연과 심연 사이를 인생이라 부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한편의 좋은 연애소설을 쓴다는 것은 작가들의 공통된 꿈일것이다.왜냐하면 모든 글쓰기의 저변에 있는 것은 타인과 통하고싶다는 소통의 욕구며 소통의 가장 완성된 형태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관해 쓴다는 것은 그러므로 유한하고 외로운 우리의 삶을 완전한 것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빛에 대해 쓴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현실은 사랑을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상처와 조건들로 가득차 있다.
소설은 현실이라는 난관속에서 사랑을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들이걸어가는 길의 험난함,그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에서 여전히 빛을 발하는 사랑을 그려내게 된다.40대 후반의 중견작가 두사람이 사랑을 그린 신작 장편을 나란히 펴냈다.
윤후명(49)씨의 『이별의 노래』(문학사상사)와 박영한(48)씨의 『키릴로프의 연인』(열림원)이 그것이다.최근 작품 『하얀 배』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尹씨의 새 소설은 사랑이 무너진폐허의 바로 그 자리에서 꾸는 영원한 사랑에 대 한 꿈으로 읽힌다. 소설은 전쟁을 포함한 부모세대의 상처투성이 삶이 남녀의사랑을 어떻게 비극적으로 굴절시키는가를 그리고 있다(이들은 배다른 오누이임이 비춰지고 있다).수수께끼같은 여행을 통해 옛사랑을 찾아가는 나는 폐허같은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공 간에서 지희.은화와 관능적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우리 사이는 명확히 끝났다.나는 그것을 모든 사물들에서 증명할 수 있었다.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사물들도 숨쉬기를 멈추는 것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우리 사이가 이렇게 끝나서는 안된다고 절규하는 또 다른 내가 자리잡고 있었다』처럼 고통속에 끝나고만다.그뒤로 세월은 흐르고 사랑의 뜻은 무지개로 남게된다.『모든 것이 흐르고 있었다.전쟁도,사람도,무지개도,종소리도,꽃도,새도,심장도,잘못된 사랑도 흐르고 있었다.그런데 문득 내 앞에 무지 개 다리가 다시 세워져 있었다.무지개 다리.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심정으로 먼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내 마음의 무지개 다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사랑의 완성이란 어디 있을까.먼지와 그을음으로 찌든 이 세기말의 하늘에도 그것은 가로질러 걸려 있었다.모든 것이 흐르고난 다음,헤어짐 조차 흐르고난다음 떠오르는 그것은 더욱 깊은 뜻으로 빛날 것이었다.』 『머나먼 쏭바강』의 작가 박영한이 6년만에 발표한 장편 『키릴로프의 연인』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두 남녀의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을 말한다.
10여년전 수수께끼같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자와 끝내 그 남자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인,남자의 친구이자 그 여자를좋아한 화자,세사람이 등장인물이다.
남자는 월남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양민까지 죽였으나 결국 동료가 베트콩에 난자당하는 모습을 풀숲에서 숨어 보고있어야 했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자는 국민학생 때 대학생 가정교사와 벌였던 육체관계를 깊은상처로 안고 살다가 남자를 만난다.
남자가 죽은뒤 여자는 정신병원을 거쳐 한번의 도피적 결혼 이후 결국 남자가 자살한 섬으로 들어가 촌여인으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그뒤에 사랑이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전언일 것이다.
50세에 가까운 두 중견 작가의 소설은 옛사랑을 되살리려 하거나 옛사랑이 지금에 가지는 뜻이 무엇인지를 캐보려는 중년의 화자,잦은 여행,진상을 거꾸로 찾아들어가는 추리적 기법이 공통점이다. 노년의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듯이 이 작가들도 더 나이든 다음에는 더 단순하고 치열한 사랑이야기를 쓰리라.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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