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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기업 사외이사는 역시 '경영진 들러리'

중앙일보

입력

주요 재벌 계열사들이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약속하고 있으나, 이를 실행해야 할 사외이사들은 여전히 대주주나 경영진의 들러리 구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사회에서 경영진이 제시한 안건에 소신껏 반대의사를 펴는 사외이사는 거의 없고, 이사회에 참석하지도 않으면서 다달이 수백만원씩 보수를 챙긴 경우도 있었다.

한겨레신문이 29일 삼성.LG.SK.현대기아차.한진.롯데.한화.현대중공업.금호.두산 등 10대 재벌 계열의 24개사(4대 재벌은 각각 3개씩, 5대 이하 재벌은 각각 2개씩)가 3월 주주총회에 제출한 '2003년 사외이사 활동보고'를 분석한 결과다.

◇사외이사는 거수기=사외이사는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대주주나 경영진을 감시.견제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조사대상 24개사의 이사회 안건처리 내역을 보면, 사외이사가 반대표시를 한 사례는 한 건뿐이다.지난해 6월 SK㈜에서 SK네트웍스에 대한 8600억원의 출자전환 건을 놓고 사외이사 1명이 반대한 경우다.나머지는 모두 100% 찬성에 100% 가결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기업 인수합병이나 계열사와의 대규모 자금거래와 관련된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애초 회사 쪽에서 제시한 안건을 수정한 사례도 거의 없고, 4 ̄5개의 안건을 불과 1시간여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한 재벌 계열사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모 교수는 "원천적으로 판단자료 자체가 부족해 경영진의 논리를 이기기가 어려운데다 평소 친분관계 때문에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다는 게 이사회의 지배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부분 사외이사들이 대주주나 경영진들의 지연.학연에 따라 선임되는 현실을 반영한 얘기다.

◇사외이사 처우는=삼성전자 사외이사 7명의 지난해 1인당 평균보수는 5644만원으로, 조사대상 회사 가운데 사외이사 보수가 가장 많다. 이어 SK텔레콤 4700만원, 삼성SDI 4571만원, 삼성물산 4100만원, ㈜두산 4050만원 등의 차례였다. LG카드(1400만원), 금호산업(1600만원), 롯데제과(1800만원) 등은 보수가 1000만원대에 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보통 한 달에 한번꼴로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정도의 노동으로 한 달에 몇백만원씩 보수를 받는 것은 적잖은 혜택이다. 4대 재벌의 경우엔 대부분 연간 지급보험료가 1000만원이 넘는 '이사회의 책임보상 손해보험'까지 들어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이사회에서 출석도 하지 않는 사외이사들이 적지 않다. SKC 사외이사 2명의 지난해 이사회 출석률은 각각 44%와 63%, 삼성물산의 7명 사외이사 평균 출석률은 67.4%, 금호산업 6명의 출석률은 39.6%에 불과했다. 금호산업 사외이사인 한 언론계 출신 인사는 출석률이 0%이다. [디지털 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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