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언파문 對北 3원칙으로 봉합-韓日정상회담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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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망언으로 빚어졌던 한-일간 갈등은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일본총리가 한-일정상회담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하면서 일단락됐다.물론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한-일관계 악화의 장기간 지속이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동인 식에 따른 봉합이다.한일합병조약이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한-일외무장관회담에서「역사공동연구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키로 합의했고 양국 정상이 이를 추인하는 방식의 우회적인 탈출구를 찾았다.
유종하(柳宗夏)청와대외교안보수석도『상호간 한일합병조약의 불법성 문제에 대한 이견은 남아있는 상태에서 계속 논의해 인식의 격차를 좁혀나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무라야마총리가 대북(對北)관계정상화 3원칙을 밝힌 것은 한-일관계의 갈등이 가져다준 부산물이다.역설적으로 에토의 망언은 분단의 상당부분 책임이 일본에 있음을 지적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물론 일본측이 「3원칙」이라고명명한 것은 아니다.우리측이 설명하기 쉽게 3원칙으로 정리한 것이다. 양국 외무부는 지난 3월이후 8개월만의 정상회담이 한-일 과거사문제로 온통 점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대북 3원칙은 일본이 과거사 망언파문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위해 우리에게 내놓은 「선물」이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지적한대로 일본의 대북 쌀지원은 북한의 한-일 이간책에 일본이 말려든 측면이 있다.그후 일본은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속에서도 베이징(北京)에서 북한과 수교교섭을 계속했다.우리 정부는 이 과정에서 소외됐다. 정부에서는 일본이 북한과 수교교섭을 하는데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하기는 어려웠다.비공식적으로 자제를 요청했을 때마다 일본이 내놓은 대답은『대북 관계개선은 한국과 협의해 결정하겠다』는 틀에 박힌 것이었다.이것을 무라야마총리 입으로 직 접 확인,다짐을 받았다는 의미다.
특히 앞으로 수교가 되기 전에는 북한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낸 것은 큰 성과다.柳수석은 이것을「앞으로 한국의 동의없이 북한에 추가로 쌀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우리를 배제한채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는없게됐다.우리가 반대하면 수교교섭을 중단하겠다는 의미도 된다.
정부로서는 적어도 북한에 대해 남북대화와 관계개선에 나오도록 종용할 유용한 외교적 지렛대를 확보한 셈이다.물 론 이런 성과는 일본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또다른 망언이 나올 경우 언제라도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남아있다.그렇지만 우리 외무부관계자들은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오사카=김두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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