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제2부 수로부인(水路夫人) 해가(海歌)19 당당하고도 무심한손놀림.자신의 소유물을 다루는 손길이었다.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남편 손은 전에도 이랬던가.곰곰이 돌이키며 아리영은 자신을의심했다.행여 우변호사에 대한 애욕이 남편 손을 거부케 하는 것은 아닌가.간사하리만큼 정직한 여자의 육신이 슬펐다.
사랑하지 않는 부부의 밤생활을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까.
법적 보호를 받는 매춘.성욕(性慾)뿐인 관행.
아리영은 반사적으로 돌아누웠다.그 서슬에 남편은 무안한듯이 투덜거렸다.
『여자 몸이 왜 이렇게 차!』 그냥 들어 넘기기 어려운 말이었다.「뜨거운 여자 몸」을 알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또 최교수 일이 떠올랐으나 참을 수 있었다.더 이상 미워하지 않아도 될만큼 남편에게 무관심해진 탓이다.
돌아눕고 우변호사 생각을 했다.그것만이 구원이었다.
『조용히 전화받으실 수 있는 시간이 몇 시 쯤입니까?』 그는헤어지며 물었다.혼자 있는 시간대를 묻는 것같았다.치밀한 사람이다. 『가는 날짜가 정해지면 비행기표를 끊고 S호텔 벨 데스크에 맡겨 놓겠습니다.먼저 떠나기 전에 다시 연락드리지요.』 우변호사는 요즘 S호텔에 묵고 있다고 했다.아리영의 동행을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하는 소리들이었다.
코펜하겐-.정말 그를 따라갈 것인가.지금 같아서는 80프로 아니다.엄두가 나지 않는다.하지만 강한 유인력에 자꾸만 말려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잠을 설치다 새벽에 일어났다.
아버지와 남편은 새벽에 목장일을 보러 나간다.식탁에서 우유를마시며 남편이 말했다.
『애소를 사랑채에 묵게 해야겠소.』 뜻밖의 말에 되받았다.
『왜요?』 『읍내에서 자전거로 출퇴근시키는 게 아무래도 마음놓이지 않아 아버님께 상의드렸더니 그게 좋겠다고 하셨어.』 읍내에서 농장까지 오자면 으슥한 산모퉁이를 돌아와야 한다.강직하고 순박한 이 고을 사람들은 염려치 않더라도 타관 불량배에 대한 걱정도 하긴 해야 한다.
『봉변 방비용으로 고춧가루 폭탄을 자전거 핸들에 매달고 다닌다 해서 끔찍했지.』 안타까운 표정이다.
『고춧가루 폭탄?』 『덤벼드는 놈이 있으면 고춧가루를 던져 뿌리고 그새 도망치겠다는 거요.』 글 이영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