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일본인들도 울어비린 덕혜옹주의 비극적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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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말하라.이 늙고 병든 백치여인이 누구인가.』 조선의 마지막황녀 덕혜옹주의 비극적 인생 앞에서 한국인은 물론 일본.중국인들도 울고 말았다.
덕혜옹주의 비운의 삶을 그린 연극 『덕혜옹주』(정복조 작.한태숙 연출.예술의 전당 제작)가 베세토(BESETO) 연극제가열리고 있는 일본 도쿄(東京) 아카사카 소게츠(草月)홀에서 12~14일 사흘간 공연됐다.에토장관 망언으로 한 .일 양국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 가운데 덕혜옹주의 한이 서린 일본땅에서 공연된 『덕혜옹주』는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일본은 범죄국가라는 역사적 오명을 씻을 수 없을 것』이라는극중 대사는 국내 공연때와는 전혀 새롭게 소게츠홀에서 더 깊고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공연을 본 일본인 연극배우 히나 료오코(雛凉子)는 『일본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운 것은 물론 깊은 내면의식을 펼친 윤석화의 연기가 압도적』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역사적으로 일본인이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거부감은 느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인 허샤오충(何孝充.중국연극가협회)씨도 『7명의 연기자들이 역동적으로 북을 치는 장면을 통해 일본의 지배에 대한 항거정신을 상징적으로 표출한 것은 민족적 특색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고 했으며 황녠치(黃念琦.중국연극가협회)씨도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공연이 끝난 뒤 열린 토론회에서 사에구사 가즈코(三岐和子.극작가)는 『그리스 비극을 연상케 한 훌륭한 공연』이라며 『덕혜옹주의 남편 다케유키에 대한 설득 력있는 묘사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그러나 13세에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강제결혼하고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등 불운의 삶을 겪은 덕혜옹주를 바라본일본인 관객들의 표정이 결코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다.일제시대를배경으로,특히 일본인을 조선인의 적(敵)으로 표현한 데 대해 당혹스러워 하는 관객도 있었다.
일본인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연극기획가)는 『해방후에도 62년까지 덕혜옹주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원인에 대해 한국인들은 되돌아보아야 할것』이라며 뼈있는 말을 남겼다.한편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된 데 이어 올해 도쿄에서 열린 제2회 베세토연극제는 일본의 『속 존 실버』『적수낭사』에 이어 한국 『덕혜옹주』를 무대에 올렸으며 중국 『사수미란』공연을 끝으로 21일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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