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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비싸면 자전거 타면 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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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며칠 전 동네 자전거포에서 12만원을 주고 자전거를 한 대 샀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왔다갔다 하는데 시간도 절약하고 운동도 될 것 같아서다.

3년 전에도 자전거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하철역 앞에 보관해 뒀던 자전거의 체인이 고장났다. 고쳐보려 했지만 잘 안 됐고, 사람을 부를 수도 없어 그냥 왔다. 그 후로 몇 주간 방치했더니 어느 날 사라져버렸다. 요즘 다시 그 지하철역에 가 보니 자전거 대수도 크게 늘고 보관대도 많이 늘려 놨다.

일본 생각이 났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에서 6개월 연수를 하면서 전철역까지 자전거를 이용했다. 일본 전철역에는 주차장만큼이나 큰 주륜장(駐輪場)이 있고, 거기에 자전거 수천 대가 빽빽이 보관돼 있다. 일본에서는 주륜도 전투다. 전철역에 조금만 늦게 가도 자전거 댈 데가 없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 앞이나 길가에 대면서 주륜 감시원이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그래도 집에 올 때 보면 자전거에 ‘자꾸 여기에 대면 끌고 가버린다’는 경고장이 붙어 있다. 실제로 자전거가 견인된 적도 있었다.

기름값 때문에 온통 난리다. 시내를 다니는 자동차 대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나는 경유를 넣는데 전에는 3만원어치 넣으면 눈금이 절반 정도 올라왔지만 요즘은 4분의 1이 될까말까다.

인터넷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카페에는 한 달 새 가입자가 7000명이 늘었다고 한다. 우리 회사에도 몇 년 전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자랑스러운 시민’이 몇 명 있다.

사진부 한 후배는 고양시 화정의 집을 나와 행주대교를 건넌 뒤 한강 자전거도로를 따라 마포대교까지 와서 다시 다리를 건너 회사로 온다. 굳이 한강 다리를 두 번 건너는 건 강북 쪽 한강 자전거길이 방화대교까지만 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면 1시간이 걸리고, 시내를 통과하면 40분이 걸린다고 한다. 시내로 오면 승용차나 버스(1시간)보다 빨리 도착한다. 그 후배는 “시내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어 위험할 때가 있다. 특히 한강 다리를 건널 때는 인도로 가야 하는데 사람들과 자꾸 부딪쳐 불편하다”고 고충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자전거도로가 더 확충되고, 회사에서 샤워 시설이나 자전거 보관소 등을 마련해 주면 자전거 출퇴근 인구가 크게 늘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는 자전거를 빌려주기도 한다. 보증금 1만원을 내면 3개월까지 무료로 이용하고, 보증금은 돌려받는다. 이 ‘그린 바이크(green bike)’ 385대를 27일부터 선착순으로 대여한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런 아이디어는 빨리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자동차는 100년 안에 고갈될 ‘공룡 시체 썩은 물(석유)’로 움직이지만, 자전거는 나 자신의 동력으로 전진한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책 『자전거 여행』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므로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를 때, 길이 몸안으로 흘러 들어올 뿐 아니라 기어의 톱니까지도 몸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내 몸이 나의 기어인 것이다. 오르막에서, 땀에 젖은 등판과 터질 듯한 심장과 허파는 바퀴와 길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자전거는 고유가 시대를 헤쳐갈 지혜로운 선택이다. 자전거는 비만 예방과 다이어트에도 좋다. 그러므로 나라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한다. 도로는 차만 다니라고 만든 게 아니다.

김훈 선생만큼 글솜씨가 없기에 요즘 TV 광고에서 유행하는 ‘되고송’으로 마무리한다.

‘기름값 겁나면/자전거 타면 되고/자전거 없으면/걸어가면 되고/걷다가 힘들면/지하철 타면 되고/뚜루루 생각대로 하면 되고…’.

정영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