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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칼럼>아직 갈길 먼 우리야구 현주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던지고 치고 달리고 지키는(投打走守)단순한 행위의 반복과 연계가 천변만화의 조화를 일으킴으로써 종료 사이렌이 울릴 때까지승패를 가늠하지 못하는 것이 야구의 매력이다.그 소질과 펀치력으로 불세출의 대타자로 군림한 베이브 루스는 『 야구란 일생을통해 연구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괴물』이라고 독백했었다.프로야구의 올 시즌 관객수가 500만명을 넘었고 프로야구 출범(82년)13년간의 관객 연인원이 4,0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니 이 괴물의 활착력은 가위 짐작이 간다.더구나 TV시청자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그것은 천문학적 수치에 가까울 것이다. 하나의 가정이지만 500만명의 야구팬들이 무더위 속에 그들의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야구장 대신 거리로 뛰쳐나온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현대 사회에 있어스포츠 공간 확보는 사회문제의 까다로운 한 부분을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어떤 고귀한 사상이 이렇게 많은 인간을 이러한 장소에 모이게 하는 것일까.어떤 정열이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목청껏 고함을 지르게 하는 것일까.어떤 희망,어떤 증오가 이들을 이처럼 움직 이게 하는 것일까.」프랑스의 작가 조르주 듀어멜은 미국을 여행하면서 아메리칸 풋볼 경기장의 열광을 목격하고 놀란 나머지 이와 같이 적었다.
거기에는 그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대관중의 포효가 있었다.『여기에 비하면 극장이나 콘서트의 군중,정치나 종교 집회는 일단무엇이라 해야 되는 것인지….』듀어멜의 놀라움처럼 오늘날 스포츠는 현대인의 본질에 관한 행사로 자리잡고 있는 것 이다.스탠드를 꽉 메운 관중의 집단적 양감(量感)은 위대한 힘을 상징한다.어떤 사상,어떤 정열,어떤 희망,어떤 증오가 있길래 사람들은 다투어 질식할 듯한 무더위 속의 야구장을 찾는 것일까.
지역연고제를 채택할 때부터 야구의 지역할거는 예고된 것이었다.고향이라는 이름의 깃발을 향해 사람들은 모천회귀(母川回歸)하듯 야구장으로 몰렸고 팀의 승패가 자신의 인생 입지와 겹쳐지면서 일희일비하는 스탠드의 풍경을 연출해 냈다.야구 경기의 내용보다는 관중석의 쇼적인 분위기,노래와 춤과 울동,그리고 모든 목소리가 범벅이 된 훤소(喧騷)의 현장에서 느끼는 자유의 만끽이 야구장을 흥청망청의 한판으로 변모시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문제는 야구 외적인 요인으로 팬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극단적인 예인지 모르나 지난 6월 한경기에서 38점이라는 상상밖의 스코어가 기록된 일이 있었다.이런 열악한 상품으로 우리 프로야구는 팬들을 맞고 있다.올 한일슈퍼게임에서 2승2무2패를 기록,반세기나 앞서 야구를 프로화한 일본과 대등한 경기를 벌인 것은 평가할만한 일이나 심한 투.타의 불균형과 어딘지 아직도 멀었다는 인상을 풍긴 점은 앞으로 보완을 요하는 대목이다.일본 프로야구 선수중 최고의 연봉은 3억8,000만엔(30억원)의 오치아이(자 이언츠)고 2억엔선이 8명,1억엔 이상만 40명선이다.한국선수의 연봉은 일본선수의 10분의1에 불과해 좋은 선수가 발붙이기 어려운 토양이다.한시즌 500만명의 팬은 썰물 같은 존재일 수 있다.야구에 심취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야구팬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가 지금부터 펼쳐져야 할 때라 생각된다.
(언론인.KOC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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