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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대신 관중 향해 샷 날리는 데 흥미 붙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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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25면

소렌스탐은 그린 위에서 보여주는 차갑고 단호한 ‘여제’의 이미지와 달리 매우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다. 가정과 아기에 대한 갈망을 자주 토로한 소렌스탐은 마침내 은퇴를 결심했다.

“타이거 우즈가 자꾸 내 퍼터를 훔쳐 가는 게 지긋지긋해서.”
14일 은퇴를 선언한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다음날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해 밝힌 ‘내가 은퇴하는 이유 열 가지’ 중 하나다. 레터맨 쇼는 코미디 토크쇼다. 물론 소렌스탐의 말도 웃자고 하는 조크였다.

농담 속 진실 담긴 소렌스탐의 은퇴 이유

소렌스탐은 이 밖에도 자신이 은퇴하는 이유를 “그린을 겨냥하는 게 점점 재미없어지고 대신 관중을 겨냥해 샷을 날리는 것에 관심이 많아져서” “스트레스가 심한 경기에서 티를 땅콩처럼 씹어 먹을 때” “(캐디가 아니라) 캐디백과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등이라고 했다. “기나긴 (미국) 대선 캠페인 때문에 인생이 지겨워져서”도 톱 10 중 하나에 포함됐다. 그의 은퇴 이유 중 1위는 “요즘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내 약혼자의 퍼트뿐”이었다.

소렌스탐의 농담은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우스갯소리라 해도 진실하지 않은 풍자는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소렌스탐의 농담 속엔 그의 고뇌와 외로움이 담겨 있었다.

소렌스탐은 은퇴를 발표하면서 “1등 말곤 다른 것은 하고 싶지 않다. (게임에) 100% 전념할 수 없다면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이런 생각으로 투어 15년을 성공적으로 보냈다. 탱크처럼 돌진하던 패기의 박세리와 상어처럼 날카로운 샷을 하던 카리 웹(호주)의 도전을 번번이 무너뜨렸고 오히려 두 선수를 깊은 슬럼프에 몰아넣었다. 그런 철녀 소렌스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세계랭킹 1위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무명 선수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그를 눌렀을 것이다. 소렌스탐은 “골프에 너무 많은 신경을 썼다. 잘 치는 것에 너무 많은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정상의 운동선수로서 필요한 초인적인 집중력에도 한계는 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30대 초반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코트를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다른 스포츠에선 30대 중반이면 은퇴하는데 골프는 그렇지 않다. 체력의 한계가 명확하지 않은 골프라는 스포츠의 특성은 장점도, 단점도 될 수도 있다.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골프의 성인’ 보비 존스는 전성기이던 28세에 은퇴했다. 항상 이겨야 하는 압박감을 견디기 어려워서였다.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11연속 우승을 달성한 바이런 넬슨도 역시 최고의 샷을 구사하던 34세에 은퇴했다. 은퇴할 때까지 동갑내기이자 전설적 골퍼들인 벤 호건, 샘 스니드와의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지켰지만 그는 정신적으로 더 이상 피폐해지기 싫었다.

완벽주의자인 소렌스탐도 마찬가지다. 항상 핀 옆에 공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오랫동안 시달리다 보면 그린이 아니라 관중을 겨냥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고 아이들이 긴장하면 손톱을 물어뜯듯 티를 물어뜯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으리라. 15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면 미치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가장 좋은 친구는 타이거 우즈였다. 정상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열정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있다. 2003년 소렌스탐이 남자대회에 나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둘은 친구가 됐다.

당시 비제이 싱은 “여자가 여기서 뭘 증명하려는 거냐”며 “소렌스탐과 한 조가 되면 기권하겠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싱은 ‘총대’를 멨고 침묵하는 다른 남자 선수들의 반응도 거의 그랬다. 소렌스탐이 외로울 때 우즈가 그를 도와줬다.
우즈는 소렌스탐을 초청해 함께 연습하면서 남자 대회에서 필요한 롱게임과 쇼트게임의 기술을 선사했다. 그때 우즈는 소렌스탐에게 자신이 아끼는 웨지를 줬고 소렌스탐은 퍼터를 우즈에게 선물했다. 이후 두 선수는 메이저대회 우승 수를 놓고 경쟁하고 문자메시지로 축하하는 등 영혼의 동반자로 지내고 있다.

소렌스탐은 여제 이전에 여자다. 정상에 서 있는 동안 그는 아이를 갖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골프와 가족을 놓고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기자는 2004년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열린 ANZ 레이디스 마스터스 전날 열린 칵테일 파티에서 만나 그의 솔직한 심경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며 골프 때문에 아이를 낳을 시기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단호해 보이는 코스에서의 모습과 달리 사석에서는 매우 따뜻했다.

자신이 부상으로 부진한 동안 로레나 오초아라는 강적이 등장하자 소렌스탐은 자신의 목표였던 그랜드슬램과 통산 최다승 기록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으로 보인다. 이혼한 후 2005년 만난 새로운 사랑과 함께 소렌스탐은 투어 생활에 찌든 골프 여제에서 가족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굳혔다. 그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였던 제리 맥기의 아들이자 네 살 연하의 마이크와 내년 1월 재혼한다. 마이크와 함께 ‘안니카’ 브랜드를 단 의류와 골프 아카데미 등을 운영할 것이다.

이제 그의 관심거리는 약혼자 마이크뿐이며 투어는 오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처럼 지긋지긋한 것이 됐다. 그의 이름도 공식적으로는 안니카 맥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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