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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美국가연합 출범 … EU 모델로 12개국 뭉쳤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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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11면

미·소 냉전기에 중남미와 동구권은 각기 미국과 소련의 안마당이었다. 미국에 휘둘리는 게 달갑지 않아도 힘의 격차에 따른 ‘대미 종속’은 중남미 사람에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제 중남미도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에 제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진전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9일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25개 회사 중 8개는 브라질이나 멕시코 국적이다. 멕시코의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엘루는 2007년 세계 최고 부자 자리에 등극했다.
미국도 새로운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초당파적 민간기구인 외교협의회(CFR)는 21일 ‘미국-중남미 관계: 새로운 현실을 위한 새로운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중남미에서 가장 중요한 외부 행위자였던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워싱턴의 대(對)중남미 정책은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남미 관계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중남미 정상들이 23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남미국가연합(우나수르) 창설을 위한 협정에 서명했다. 남미 12개국이 유럽연합(EU)을 모델로 지역 통합에 나선 것이다. 에너지·인프라·교통·금융·이민 등의 분야에서 공동 정책을 추진하고 2019년까지 EU 수준의 통합을 이룬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멕시코와 파나마는 옵서버로 참가한다.

남미국가연합은 남미대륙의 양대 경제블록인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안데스공동체(CAN)를 묶어 경제성장을 가속하고 미국이나 EU에 한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브라질은 일부 참가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미안보협의회까지 창설해 군사적으로도 통합을 추진하려고 한다.

남미국가연합의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친미·친시장적인 칠레·콜롬비아·페루·브라질 등과 그 반대 성향인 베네수엘라·볼리비아·에콰도르·아르헨티나 간의 정책 조율이 삐걱거리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23일 “남미국가연합은 적어도 당분간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기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한편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16~17일 EU-중남미·카리브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양 대륙의 각국 정상 50명이 참석해 식량·지구온난화·에너지·자유무역 등의 문제를 다뤘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폐막됐다. 그러나 ‘지역 대 지역’ 협력은 EU가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남미국가연합의 진전에 따라 유럽·중남미 연대가 급진전할 가능성도 있다.

중남미 독립의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중남미 통합을 염원했다. 볼리바르는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공을 틈타 콜롬비아·베네수엘라·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를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는 신생 중남미 국가들이 통합하지 않으면 결국 미국의 세력권에 편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미국가연합의 탄생은 볼리바르의 꿈이 성취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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