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책갈피] 복잡한 경제학 딜레마 읽는 재미 쏠쏠하게 풀었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지식경제학 미스터리
데이비드 워시 지음, 김민주 외 옮김
김영사, 712쪽, 3만2000원

2년여 전 마이크로소프트(MS)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윈도 PC운영시스템
에 메신저와 미디어플레이어를 끼워 파는 건 불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반론도 상당했다. 새로운 기술로 신시장을 개척하면서 규모가 커져 독점기업이 됐을 뿐인데 이를 반(反)경쟁이라며 벌을 주는 건 잘못이라는 지적이었다.

경제학자에게 이 문제는 사실 딜레마다. 경제학에서의 시장은 경쟁시장뿐이다. 고만고만한 덩치를 가진 수많은 기업들이 엇비슷한 제품을 생산하는 시장, 그래서 어느 누구도 가격을 주도하지 못하고 폭리를 챙기지 못하는 시장이다.

경제학에서 독점이나 불완전경쟁은 예외적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지 못하는 시장이라서다. 각자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경쟁)에 의해 사회 전체의 이익이 극대화되는데, 이걸 못하도록 막는 게 독점이다. 그래서 경제학은 이를 ‘시장 실패’라고 규정하고 정부의 개입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경제성장이 문제가 된다. 과거에는 토지와 노동, 자본이 생산의 3대 요소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이디어와 지식이 경제번영의 열쇠인 시대다. 토지 등이 생산요소이던 시절에는 수확체감 법칙만 작동했지만 지식경제의 시대엔 수확체증의 법칙이 일상적으로 통용된다. 독점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이를 규제하면 아이디어와 지식창조가 여의치 않게 되고, 따라서 경제성장이 힘들어지게 된다.

경제학자에게 이는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도 주장했지만 분업과 특화도 강조했다. 핀 공장 얘기가 그것이다. 노동자 한 사람이 핀 공정을 전담하면 하루에 핀 한 개밖에 만들 수 없지만 분업을 한다면 하루에 5000개를 만들 수 있다. 분업이 규모의 경제와 독점을 낳는다는 얘기다. 경쟁의 아버지인 아담 스미스가 독점을 초래할 분업과 특화를 강조한 것 자체가 미스터리다.

이 책은 이런 딜레마와 미스터리를 미국의 대표적인 지식경제학자인 폴 로머의 신경제학 이론을 중심으로 풀어간다. 신경제의 생산요소는 사람과 아이디어, 재료다. 이중에서도 아이디어(지식)가 가장 중요하다. 아이디어의 공유를 통해 경제는 계속 성장한다. 따라서 수확체감 못지않게 수확체증도 경제학의 주요 법칙이다. 또 독점은 일시적이며 곧 경쟁체제로 다시 변한다. 그러므로 아담 스미스의 미스터리는 이제 더이상 미스터리가 아니다. 다만 로머는 아이디어의 공유를 주장한다. MS처럼 아이디어를 사유화하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이디어에 대한 인센티브는? 시장만이 전부는 아니란다. 현금 보상외에도 감사패나 다른 사람 연구에 인용되는 것 등 다른 형태의 인센티브도 많다고 한다.

내용도 알차지만 이 책의 최대 강점은 ‘읽는 재미’다. 지식 경제학뿐 아니라 아담 스미스 등 고전경제학에서 폴 새뮤얼슨과 밀턴 프리드만 등 현대 경제학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사상과 이론, 개인적 일화를 소상히 소개한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만이 “경제학의 모든 것을 공부할 수 있다”고 평가한 건 절대 허언이 아니란 느낌이다. 신문기자 출신인 지은이가 토로하듯 ‘경제학의 아웃사이더’가 쓴 책인 만큼 그리 어렵지도 않다. 경제사상과 경제학사 분야의 대중서로는 10여년전에 출간된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이후 가장 뛰어난 책 같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