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라의KISSABOOK] 동·서양 신화 읽어보니 “인간보다 더 인간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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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신이라면 전지전능해야 한다. 위엄과 사랑을 고루 갖춰야 한다. 그런데 신화 속의 신들은 어째 영 이상하다. 무슨 신들이 죄도 짓고, 벌도 받고, 저주에 묶이기도 한다. 인간과 흡사한 불완전한 신들. 그 친근함 덕분에 오랜 세월 인간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불멸의 영생을 누리고 있는 걸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자를 꼽는다면 단연 헤라클레스다. 이윤기가 어린이를 위한 영웅 시리즈에서 제일 먼저 다룬 신 역시 그다(『이윤기의 영웅 이야기, 헤라클레스』·아이세움).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몽둥이를 들고 으르렁대고 있는 헤라클레스는 질투에 눈이 먼 헤라여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 평생을 고군분투해야 했다. 그렇다고 자기 손으로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툭하면 싸움질이나 일삼고 다니다니. 성질머리 한 번 고약하지 않은가.

이런 신이 어떻게 부동의 인기투표 1위의 영웅이 된 걸까. 주어진 운명에 굴하지 않고 결국엔 ‘지상에서 영원으로’라는 인간 최후의 꿈을 이룬 그의 족적을 함께 밟으며 답을 찾아보자. 마침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조각가 부르델의 ‘활 쏘는 헤라클레스’를 볼 수 있다니, 아이 손잡고 가 보시면 아주 유익할 듯.

지금껏 신화 자체를 정면 돌파해 온 책이 대세였다면, 폴 쉽튼의 『돼지 영웅 그릴러스』(주니어랜덤)는 엉뚱한 상상력을 통해 신화를 동화 속에 재연했다. 인간이었다는 분홍 돼지 그릴러스와 예언녀 시빌이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며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신화를 재미 쏠쏠하게 만들어 낸다. 드디어 돼지한테까지 열린 신화의 무한한 지평을 보며 그리스 신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서양 신화에 기우뚱 치우친 독서풍토의 균형 잡기를 위해 정재서의 『이야기 동양 신화』(황금부엉이)를 함께 공부해 보자. 동양 신화와 중국·한국 문화와의 연관성까지 다루고 있어 아이와 찬찬히 읽으면 숲과 나무를 아울러 보는 지적 발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신화를 파고 들어갈수록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쉬울 터. 우리 옛이야기를 맛보며 색다른 즐거움을 찾고픈 분을 위해 최정원의 『나무 도령』(영림카디널)을 소개한다. 이렇게 편식 없이 신화와 설화를 고루 찾아 먹었으니, 오늘 밤 꿈에 동서양 영웅들이 총천연색으로 대거 출동해도 놀라지 마시길.

대상 독자는 영웅 꿈에 부푼 12세 이상의 어린이와 은근히 내 아이가 영웅 되기를 바라는 엄마들.

임사라<동화작가> romans8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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