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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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삼국유사』는 가락국의 건국을 서기 42년3월로 적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구지봉(龜旨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너희는 모름지기 산꼭대기에 올라가 흙을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만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하고 노래부르며 춤을 추어라.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마을사람들이 노래하다 하늘을 우러러보니 자줏빛 줄이 드리워졌다.그줄 끝에 매달린 금합(金閤)안엔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들어있었다.추장(酋長)이 집에 가져다 뒀더 니 여섯 개의 알은 다음날 잘생긴 여섯 아이가 되었고,열흘 후엔 9척의 장사가 되었다.그중 한(漢)나라 고조(高祖)처럼 얼굴 생김새가 용같고,당(唐)나라 고조처럼 눈썹이 여덟 팔(八)자로 채색이 도는 이가왕위에 올라 이름을 「수로 (水露)」라 했고,나라 이름은 대가락(大駕洛)또는 가야국(伽耶國)이라 했다.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각 가서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김수로왕의 얼굴이 용과 같았다는 서술이 흥미로웠다.언젠가 용은 가야계 사람들의 상징같다던 서여사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가야를 품어 키운 낙동강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흡사 거대한 청룡이다.
용의 옛말은 「미르」.물의 고구려말 「밀」과 한 낱말이다.용은 곧 물의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건국은 기원전 37년.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의 성은고(高)씨다.애초 그가 적의 무리 속에서 도망쳐올 때 큰 강을만났는데,자라가 모여들어 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해줌으로써 무사할 수 있었고 고구려를 세울 수가 있었다.자라 와 거북은 같은파충류에 속하는 비슷한 생김새의 물짐승이다.
고구려와 가야의 건국신화에 다같이 이 물짐승이 등장하는 것은우연의 일치인가.가야는 어쩌면 고구려계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김수로왕 모습이 한나라와 당의 「고조」같다며 중국왕의 이름을짐짓 인용하고 있으나 고구려왕 고씨 가문의 인물임을 암시한 것일 가능성은 없을까.
또 수로부인은 김수로왕의 후손인 가야왕가의 여인이어서 고구려후예인 발해의 고제덕(高齊德)이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수로의 남편 순정공도 구지가를 본떠 거북이 노래를 부르게 하여 수로가 김수로왕의 혈통임을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서여사와 아리영은 만나기만하면 역사 추리에 열을 올렸다.
얘기는 끝이 없었으나 직원이 결재서류를 잔뜩 안고 들어오는 바람에 일어서 나왔다.
한옥 대문에서 하얀 레인 코트를 입은 신사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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