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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찾아 2년간 서울 구석구석 누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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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울에도 고인돌이 있습니다. 현대의 첨단 문명과 선사시대 문화가 함께 숨쉴 수 있다면 서울이 얼마나 근사해지겠습니까."

문화재청 민간 모니터로 활동하는 김영창(56.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급여실장)씨. 특히 지석묘에 애착이 많은 그를 주변에서는 '고인돌 지킴이'라 부른다. 이런 그에게 지난 15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 됐다. 그의 노력으로 서울 구로구 고척동 신정산 기슭의 고인돌 유적(사진 (右))에 안내판과 보호 시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고척동 고인돌'은 1990년대 말 한 대학에서 발굴조사한 뒤 그동안 방치돼 있었다. 더구나 시민의 발길이 잦은 등산로에 인접해 그대로 뒀다간 자칫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안내판이 서던 지난 15일 그간 애태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 이 나이에도 혼자 한참 울었습니다."

그는 2년 전부터 서울 전역을 돌며 고인돌 찾는 일에 매달려 왔다.

"함께 활동하는 동료에게서 서울에도 고인돌이 있다는 얘기를 언뜻 들었습니다. 각종 기록을 찾아보니 실제로 원지동.개포동.우면동.정릉.고척동 등에 30~40여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접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답사에 나서면서 金씨의 기대는 허탈감으로 변했다. 그간 학계에 보고된 상당수의 고인돌이 도시개발 와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16기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원지동의 경우 도로와 화원 등이 들어서면서 안내표지만 남고 대부분 사라졌다. 또 우면산에 고인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찾아가 확인했지만 너무 심하게 훼손돼 고인돌로 인정받지 못했다. 고려대에서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고인돌을 찾았지만 알고보니 지방에서 발굴한 것을 학술용으로 옮겨온 것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4월 마침내 고척동에서 고인돌로 유적을 확인했다.

그는 "기쁨도 잠시였고 이러다가는 정말 '서울 고인돌'이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문화재청에 현황 보고서를 제출하고 자신이 소속된 '고인돌 사랑회'의 이름으로 서울시와 구로구청 등에 보호시설의 필요성을 알렸다. 그러나 지정된 문화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예산을 배정받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해 10월에는 구의회를 직접 찾아가 고인돌의 중요성을 설명한 끝에 승낙 받을 수 있었다.

金씨는 "고인돌은 남북에 골고루 퍼져있어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해주는 증표이기도 하다"며 "소중히 보존해 후대에 전해야 할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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