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우리딸이 보여요” 잠비아 할머니 기쁨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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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해 원장(VCS 대표)이 14일 잠비아 루사카 안과병원 수술실에서 백내장 수술에 앞서 환자의 눈 주변을 소독하고 있다. [사진=강기헌 기자]

아프리카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로부터 100여㎞ 떨어진 마을에 사는 루시아 줄루(67) 할머니는 두 눈을 잃었다. 그의 오른쪽 눈동자는 하얗게 변색됐다. 1996년 백내장을 앓기 시작한 뒤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왼쪽 눈은 날 때부터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살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딸 릴리안(34)은 한숨만 내쉴 뿐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수술을 시켜드릴 엄두조차 못 내서다. 릴리안은 2000년 말라리아로 남편을 잃고 홀로 토마토를 팔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런 루시아 할머니가 15일 딸의 부축을 받으며 루사카 외곽의 안과병원을 찾았다. ‘눈을 고쳐준다’는 한국 선교사의 말에 100여 ㎞ 떨어진 이곳을 찾은 것이다.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루시아 할머니가 한국인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수술대에 누웠다. 할머니를 맞이한 김동해(43·명동성모안과) 원장 등 한국인 의료진이 수술에 들어갔다. 김 원장은 한국에서 공수해온 초음파 장비로 하얗게 굳은 수정체를 세심하게 제거한 뒤 인공 수정체를 넣었다.

21분 만에 수술이 끝났다. 그러곤 루시아의 눈에 한줄기 빛이 들어왔다. 두 눈을 감은 붕대 사이로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할머니는 “새로 태어난 것 같다”며 딸과 김 원장의 손을 부여 잡았다.

한국인 의료봉사단체 ‘비전케어서비스(VCS)’는 12일부터 16일까지 아프리카의 최빈국 잠비아에 머물며 무료 안과캠프를 진행했다. 루시아 같은 백내장을 앓고도 가난으로 치료를 포기했던 환자 50명에게 시력을 되찾아줬다.

세상의 빛을 되찾게 된 노인들은 ‘생큐’를 연발했다. 5년 전부터 두 눈에 백내장을 앓아 시력을 잃었던 알리 시왈레(70)는 “이젠 귀여운 손주 얼굴도 다시 볼 수 있고 농사도 거들 수 있다”며 기뻐했다.

수술을 맡은 안과전문의와 간호사, 통역을 담당했던 팀원 12명 모두 자원봉사자였다. 경비는 LG전자·LG디스플레이·SC제일은행 등 한국 기업들의 후원으로 충당했다.

백내장은 아프리카에선 흔한 노인성 질환이다. 특히 적도 부근에 위치한 내륙국가 잠비아는 강한 자외선 탓에 발병률이 높다.

국내에선 30분이면 치료 가능하지만 극빈국 잠비아에선 영영 시력을 잃을 확률이 높다. 열악한 의료 사정 때문이다. 현지의 수술비는 15만원 선이다. 서민 가정의 서너 달 생활비에 맞먹는다. 잠비아의 1인당 GNP(국민총생산·2005년)는 931달러, 세계 168위 수준이다. 인구 450만 명의 루사카에 있는 안과 의사는 단 5명이다. 현지 의사 페리티언스 마탄디코(루사카 안과병원장)는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환자가 9000여 명에 이른다. 노인들은 ‘나이 들면 안 보이기 마련’이라며 백내장을 질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비전케어서비스가 무료 개안 수술을 한 것은 2002년부터다. 지금까지 파키스탄·몽골·캄보디아·이집트 등 14개국에서 백내장 환자 3394명 등 2만2960명을 치료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의 시각장애인은 1억3000만 명에 이른다. 구자경 VCS 사무국장은 “한국인 의료진의 실력과 사랑으로 어둠 속에 있는 제3세계 빈민들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을 건네고 싶다”고 밝혔다.

루사카(잠비아)=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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