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조가 '통일기금'까지 내놓으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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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단체협상을 앞두고 대기업 노조가 사용자 측에 요구한 사항을 보면 기가 막힌다. 민주노총은 사용자 측에 '통일 기여 조항'을 신설하고 모범조합원의 방북 경비를 지원할 것을 요구키로 했다. 민주노총 산하 4개 자동차노조는 한술 더 떠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해결 등을 위해 회사별로 순이익의 5%를 거둬 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기업은 최악의 내수부진을 겪고 있는데 노조가 기업이익의 분배라는 경영권에 간섭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민주노총은 기업이 통일운동에 참여해야 한다며 조합원의 방북경비, 통일기금, 북한 노동자 초청 경비 등을 내라고 요구했다. 이제 노조가 통일운동 선봉장이 될 모양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회사엘 다니는가. 통일운동 하는 시민단체 운동원이 되면 되지 않는가. 기업은 좋은 상품 만들어 이익을 내고 그 이익을 재투자해 고용을 늘리는 것이 그 사회적 임무다. 노조는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를 놓고 사용자와 협의하는 기구다.

자동차 4사 노조가 요구한 비정규직에 대한 지원도 부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의 차별 문제는 사실 노조의 기득권 고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조의 기득권 포기가 전제돼야 한다. 자기들의 임금은 계속 고수하면서 비정규직 부담까지 회사에 떠넘기면 회사가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 지금 자동차 업계는 특소세를 감면할 정도로 내수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유례가 없는 순익갹출을 요구하니 이는 도를 넘어선 경영간섭이다.

대기업 노조가 근로조건과 무관한 정치적 요구나 경영간섭을 하는 것은 숫자의 힘을 빌려 모든 문제를 밀어붙이자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주노총이 '탄핵가결 규탄'을 이유로 매주 수요일 산하 사업장별로 잔업거부 투쟁에 돌입해 기업경영에 타격을 가하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제발 자기영역에서 자기 할 일이나 열심히 하라. 정치운동.통일운동을 하고 싶으면 아예 그 방면으로 나가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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