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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국보다 못한 근로의욕,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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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 근로자들은 일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고용안정과 소득이다. 그러나 고용안정에 대한 만족도는 54점(100점 만점)에 불과하다. 소득 만족도는 39점밖에 안 된다. 일에 대한 흥미나 발전 가능성도 자신의 일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지만 만족도는 43~56점 수준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근로의욕 저하로 나타난다. 대구의 중견 자동차부품회사 부장인 손성호(가명·45)씨는 완성차업체에서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파업이 장기간 벌어질 때면 가슴이 철렁한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사오정 세대에 딱 걸린 자신이 먼저 해고될 것이란 불안감 때문이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로는 잘리지 않으려 애쓴 기억밖에 없는 것 같다”며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눈치만 보게 된다”고 말했다.

◇생각과 다른 현실=‘2007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는 고용안정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89점)하고 있지만 실제로 느끼는 고용안정 정도는 54점밖에 안 된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점수로 35점이나 됐다. 비교 대상 32개국 중 차이가 가장 크다. 스위스나 미국·일본은 그 차이가 11~20점밖에 안 난다. 그만큼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 적다는 의미다.

일에 대한 흥미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한국은 일에 대한 흥미의 중요도가 86점, 만족도는 56점으로 차이가 20점이나 됐다. 흥미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 스위스는 그 차이가 6점, 3위인 미국은 10점에 불과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인지(32위)에 대한 확신도 다른 나라 근로자들에 비해 약했다. 한국보다 경제상황이 낙후된 남아프리카공화국·체코·헝가리·필리핀·동독·라트비아 근로자들이 오히려 고용이 안정돼 있다고 생각하고, 일에 대한 흥미도도 높았다.

김상욱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근로 상황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고 더 열악하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이런 현상은 직무에 대한 불만, 조직 헌신도에 대한 저하, 빈번한 이직을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직장에 갖는 충성도는 조사 대상국 중 16위로 중간 정도였다. 임금근로자로 계속 남고 싶은 사람의 비율은 35.5%에 그쳐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29위로 하위권이었다. 대신 자영업을 선호(65.5%·4위)했다. 직장에서 탈출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능력껏 일하고 싶다는 욕망이 읽힌다.

◇20대도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강모(26·여)씨는 2년 전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은행에 입사했다. 그런데 지금 그에게서 활기가 사라지고 있다. “새로운 목적의식이나 동기가 발견되지 않는다. 일한 뒤 뭔가 성취감이 있거나 즐거움이 있으면 열심히 하겠는데 지금 맡은 일이나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면 비전이 안 보인다”는 게 이유다.

KGSS 조사 결과 한창 일할 나이인 30~40대의 직업안정성, 일에 대한 흥미, 일을 통한 사회적 기여도에 대한 만족도는 조사 대상 26개국 중 꼴찌다. 20대도 같은 항목에서 20위권 밖에 랭크됐다. 일을 하면서 기술을 습득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24위)이다. 김 교수는 “기술은 ‘직업’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보다 단지 ‘직장’을 위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투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기찬·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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