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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부족 시대 계속되면 농업국이 수퍼파워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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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은 국가 경제력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돼 왔다. 역사적으로 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들이 대개 경제 강국의 자리를 차지해 왔다. 하지만 식량 부족으로 먹거리 값이 뛰는 시대에는 사정이 좀 복잡해진다.

헬렌 클라크(58·사진) 뉴질랜드 총리는 “식량 부족 시대에는 농업 국가 중에도 수퍼 파워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밀·콩·쌀 할 것 없이 국제 곡물 가격이 뜀박질하고, 신흥 부국의 등장으로 육류와 유제품 수요가 늘면서 먹거리 생산국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한 클라크 총리를 1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야당 지도자 시절 두 차례, 총리 취임 이후 네 차례 한국을 찾은 터라 한국 사정에 밝은 편이다.

-원자재 부족이 심해지면서 자원 부국과 농업 국가가 새롭게 주목받는다.

“식량 부족 현상은 뉴질랜드에 기회다. 주요 곡물·식량 생산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농업 수퍼 파워’ 시대가 올 것이다. 과거 한국·일본 등 식량 수입국들은 뉴질랜드가 당연히 식량 공급원이 될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농산물을 원하는 나라가 늘었다. 관세가 높은 나라는 수입할 때 불리해진다. 세계 각국이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뉴질랜드 FTA 협상은 어떻게 돼 가나.

“1999년 총리 취임 직후 한국에 FTA 협상을 제안했으나 한국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뉴질랜드는 지난달 중국과 FTA를 체결했다. 중국과 교역이 활발해지면 상대적으로 한국에 기회가 적을 수 있다. 한국과의 FTA 협상이 곧 시작되길 바란다.”

-한국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정치·사회 이슈가 됐다.

“한국처럼 부유한 나라 국민들은 싼 것 못지않게 안전하고 품질 좋은 먹거리를 원한다. 과학적인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감정이나 공포심·괴담에 의존해선 곤란하다. ‘돌팔이 의사’한테 끌려다니는 꼴이 되면 안 되지 않나.”

-뉴질랜드에는 광우병 쇠고기 공포가 없나.

“뉴질랜드에서는 한번도 가축 관련 질병이 발생한 적이 없다. 우리의 강점이다. 청정한 환경과 생물학적 안전을 중시하는 위생관리 시스템을 갖췄다.”

-뉴질랜드 농산물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나.

“뉴질랜드 수출품의 57%는 식음료다. 1차 농산물뿐만 아니라 와인·치즈·쇠고기·과일 같은 프리미엄급 고부가가치 상품이 많다. 뉴질랜드 농업의 경쟁력은 농업을 보호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우리 농산물은 세계 시장에서, 그리고 외국 상품은 뉴질랜드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한다.”

-한국 농업에 조언을 한다면.

“무얼 잘 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틈새·특화 시장을 찾아야 한다. 일본에서 고베 쇠고기를 맛있게 먹은 적 있다. 뉴질랜드 쇠고기와는 또 다른 맛이더라. 독특하면서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먹거리를 개발해야 한다.”

-뉴질랜드를 이끈 지 10년 가깝다. 리더로서의 철학은.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에 이르는 시행 계획을 보여줘 사람들이 따라오게 해야 한다. 슬로건과 섣부른 정책을 남발하는 걸 리더십이라고 하는 건 공허하다. 뉴질랜드는 의회 국가여서 야당을 설득하고 함께 끌고가는 ‘컨센선스형 리더십’이 자리 잡았다. 정책도, 리더도, 환경도 결국 지속 가능해야 한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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