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갇힌 아이들] 3. "엄마, 아파서 미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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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소녀의 기도를 들어줄까. 서울시립아동병원 병상에 누워 있는 李모(16)양. 머리에 물이 차는 수두증(水頭症) 기형으로,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아 줄곧 이곳에서 지내왔다. 한 자원봉사자가 소녀의 힘없는 손에 묵주를 감아주었다.

서울 구로구 지하 월세 방에서 홀로 살고 있는 정미(17.여)는 혈당 수치가 300~400㎎/㎗를 오르내리는 중증 당뇨 환자(공복시 126㎎/㎗ 이상 당뇨병)다. 지난해 5월 갑자기 찾아온 갈증에 시달리다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이 지경이 되도록 왜 병원에 안 왔느냐"며 호통을 쳤다.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중병에 걸려 친정 집으로 돌아가 몸져누웠고, 오빠가 가출하면서 정미는 고아 아닌 고아가 됐다.

실업고 2학년 때인 지난해 12월 병색이 눈에 띄게 깊어지면서 휴학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미는 지금도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 혈당을 체크하고 하루 두번씩 인슐린 주사를 놓는다.

매달 19만8000원에 불과한 정부 보조금이 생활비의 전부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병원 출입은 엄두조차 못 낸다. 엄마를 떠올리면 정미의 마음속에선 항상 두가지 생각이 다툰다고 한다. "엄마 아파서 미안해. 하지만 나를 왜 이렇게 외롭게 만들었어."

가난에 갇혀 있는 아이 100만명 중 적지 않은 수가 생활환경이 비위생적인 데다 병의 치료 시기를 놓쳐 몸도, 마음도 찌들어 있다. 실제로 본사 취재팀이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협조로 전국 공부방 아동 406명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아팠지만 병원에 못 간 적이 있다'고 응답한 아동이 35.7%나 됐다.

빈곤 아동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게 저하돼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는 일선 학교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보건교사회에 따르면 임대아파트 밀집지역의 서울 Z초등학교에선 저소득층 아동 415명 가운데 80명(19.3%)이 빈혈 증세를 보이고 있다. 일반 아동의 빈혈 증세는 평균 2~3% 선이다.

서울의 다른 저소득층 밀집지역에 있는 Q초등학교는 지난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충치 검사를 했는데 전국 초등생 평균 보유율의 두배인 62%가 충치를 갖고 있었다. 이 학교 보건교사는 "치료 시기를 놓쳐 생니를 뽑아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취재팀이 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17세 이하 남자(대상 1464명)의 평균 체중은 월 소득 100만원 이하의 가구는 27.9㎏이지만 300만원 이상의 가구는 32.6㎏으로 4.7㎏의 차이를 보였다. 아이들의 신체적 발육이 경제적 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 지표다.

빈곤은 정서 발달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보사연의 분석 결과 12~17세 청소년에게 '지난 일년간 얼마나 자주 슬프거나 우울하다고 느꼈느냐'고 물었더니 월 소득 300만원 이상의 가구에선 2.7%만 '언제나 그랬다'고 답한 반면 월 소득 100만원 미만의 가구에선 8.5%나 '언제나 그랬다'고 대답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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