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어린이책] 더는 지기 싫다 … 난 다시 일어날거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난 할 거다
이상권 지음, 사계절, 196쪽
8800원, 중학생 이상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는, 그 우여곡절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다. 소설이란 허구의 형식을 빌린, 작가의 자전적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상권(44). 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해 『하늘과 날아간 집오리』『그 녀석 왕집게』 등 50여 권을 책을 써낸 중견작가다. 그는 “딸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아빠로서,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친구로서, 동료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성장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몫”이라는 그는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도록 자기 자신만의 자존감을 만들어 가기 바란다”며 주제부터 선명하게 앞세운다. 주인공은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시우. 작가의 한 세대 전 모습이다.

시우는 혼자 도시에 나와 자취를 하며 학교에 다니게 됐다.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포기해야 했던 형과 누나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을까. 중학교 때까지는 나름 모범생이었는데, 입학 직후부터 난데없이 ‘공황장애’에 시달린다. 선생님이 이름만 부르면 눈 앞이 하얘지면서 아무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 것이다. 졸지에 문제아로 찍힌 시우. 하루 걸러 하루씩 매를 맞으며 반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래도 시우는 자존감을 내던지지 않았다. “난 큰 사람이 되기 위해 도시로 유학 나온 비싼 몸. 어머니 기대에 어긋나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각오나, “우리들 중에는 니가 가장 싹수 있잖아. 판검사 아니면 외교관 쪽으로 크게 생각하라”는 고향 친구들의 은근한 부러움도 시우를 잡아주는데 힘을 더했을 터다.

그리고 시우는 미칠 듯이 몰입할 만한 대상을 찾아냈다. 우연히 학교 도서관을 발견하고, 졸업 전에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읽기로 목표를 정한 것이다. 책을 읽다 좋아하는 문장을 베껴쓰고, 또 창작을 해보며 ‘작가’의 꿈을 키운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순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시우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교사 양덕수 선생님은 갑작스레 전근을 갔고, 대출받은 책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한 학기동안 대출이 금지됐다.

또 수학여행 감상문 쓰기 대회의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막판에 “누가 써줬거나 베낀 글”이라는 누명을 쓰고 상을 다른 아이에게 빼앗겼다. 그 뿐인가. 속상한 마음에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을 먹다 선도부 선배들과 싸움이 벌어졌고 그 일로 유기정학까지 당했다. 더이상 견딜 힘이 남아 있을까 싶을 때. 그래도 시우는 다시 힘을 낸다. “더는 지기 싫다. 이렇게 져 버린다면, 너무 허무하다”는 오기였다. 그 원동력은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지지다.

“어매는 너를 믿는다. 내 아들을 믿는다. 그렁께 한사코 몸단속 잘하고, 정신 채리고 너를 잘 다독거려야 써. 너밖에 없다. 니 정신을 순집어 주고, 니 몸들 북돋아 주는 것, 고런 것들 다 누가 해 줄 사람이 없다. 오직 니 자신밖에 없다. 알았지야?”(179쪽)

문제투성이 인생살이에 시달리는 초라한 자신을 다시금 추스리도록 부추기는 대목이다.

향토색 짙은 글귀를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는 맛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썩은 쥐 냄새를 맡고 날아오는 쉬파리처럼 도라무통 선생님이 어기적어기적 걸어왔다”(53쪽), “장마 구름들이 은밀하게 빗방울을 추렴하면서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80쪽), “밭고랑에 앉아서 당신 닮은 쇠비름이랑 호미 씨름을 하듯이 토막토막 애절하게 내뱉는 말소리를, 나는 귀가 아니라 가슴 속으로 끌어들였다”(179쪽) 등. 허투루 공간을 채운 문장이 없다. 

이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