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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째 전과목 영어 수업 …‘ 한국 속 국제 캠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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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광주과학기술원의 세브리야코프 교수(러시아인)가 강의를 하고 있다. 이 대학에는 외국인 교수가 5명이며, 외국인 학생은 88명이다.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광주광역시 오룡동의 대학원대학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영어 특구’로 통한다. 1995년 개교 이래 지금까지 13년 동안 전과목 강의와 회의 등 학내의 모든 행사를 영어로 진행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학원대학은 국내에서 광주과기원이 유일하다. 한국인 학생들에게는 영어권으로 유학 간 효과를,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는 한국어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수학하게 하는 효과를 얻게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영어 몰입교육’과 국제화가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을 계기로 광주과학기술원을 찾아 캠퍼스 국제화의 노하우와 효과를 짚어봤다.

◇영어가 교내 공용어=13일 광주과학기술원 ‘삼성환경과학연구동’ 311호. 환경공학과 김경웅 교수의 토양환경화학 과목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은 5명. 한국인 3명, 태국인 1명, 베트남인 1명이 김 교수가 영어로 하는 강의를 열심히 들으며 필기를 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영국에서 유학을 했으나 학생들은 모두 비영어권 출신으로, 영어로 하는 수업은 광주과학기술원에 입학하면서 처음 듣기 시작했다.

베트남인 팜 타이 민한(34·석박사통합과정 4학기차)은 영어로 된 두꺼운 대학교재를 들어 보이며 “이 과목을 한국어로 했다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영어가 공용어화돼 있기 때문에 공부하거나 친구를 사귀는 등 교내 생활에 전혀 불편이 없다”고 말했다.

유영준(국제화센터장) 교수는 “교내 어느 모임을 가거나 한두 명씩의 외국인이 섞여 있기 때문에 영어를 쓰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보통신공학동에서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시작된 러시아인 세브리야코프 교수가 진행하는 ‘정보와 부호화’ 과목 수업에도 20여 명이 참석해 교수의 열강을 듣고 있었다. 김 교수나 세브리야코프 교수의 영어 발음이 미국인 또는 영국인 같지는 않아도 원리를 설명하고, 또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이공계 출신 국제경쟁력 높여=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수업시간뿐 아니라 학과나 연구실 회의 등에서 영어를 쓰기 때문에 싫든 좋든 영어와 친숙해질 수밖에 없다. 국경이 없는 이공계 특성상 실력 있고, 언어소통이 자유로우면 자신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안정이(26·석사 3학기차)씨는 지난 1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국제환경모니터링심포지엄에 참석해 7~8명 외국인들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는 못해도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 쭈뼛쭈뼛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광주과학기술원 학생들은 개교 초창기부터도 해외 학회나 심포지엄에 단독으로 참가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대학은 학생들이 언어소통에 어려움이 커 교수가 보호자 격으로 함께 가던 시절이었다.

◇국제 논문 발표 1위=광주과기원 대학원생 1인당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 게재 건수는 2006년 0.62편으로 국내 대학원 중 1위다. 2003년 이후 4년 연속이다. 이는 석사과정 학생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며, 졸업생의 논문만 계산하면 1인당 2007년 5편, 2006년 6.5편에 이른다.

김기선 교무처장은 “이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나 스탠퍼드 대학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대학원의 연구가 활발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국제적인 활동에 언어장벽이 없는 것이 크게 기여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교수들 역시 개교 이래 12년(1995~2006) 동안 1인당 SCI논문 총 발표 건수에서 국내 1위를 내놓지 않고 있다.

◇비영어권 유학파 영어 연수 보내기도=광주과기원이 전과목을 영어로 수업하게 된 것은 개교 당시 교무처장이었던 백운출(현재 재미)교수가 밀어붙여 시작됐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몇 안 되는 미국 학술원 회원이기도 할 정도로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는 당시 일본 등 비영어권에서 유학한 몇몇 교수들이 “영어로 수업할 수 없다”고 버티자 1년씩 미국으로 영어 연수를 보냈다. 한국 대학에서 영어로 수업하기 위해 교수를 연수 보낸 것은 광주과기원이 처음이다. 광주과기원의 이런 노하우는 KAIST가 서남표 총장 부임 이후 배워 가기도 했다.

문승현 원장직무대행은 “KAIST가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의 교과과정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면 광주과기원은 캠퍼스 국제화의 전형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외국인 유학생 ‘천국이자 지옥’
콜롬비아 등 16개국 학생 88명 생활
환경 좋지만 공부는 혹독하게 시켜

광주과기원은 외국인 유학생의 ‘천국’이자 ‘지옥’이기도 하다. 유학 환경은 좋지만, 공부를 혹독하게 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외국인 유학생은 88명으로 전체 학생 수 839명의 약 10%에 해당한다. 중국·일본·인도·루마니아·콜롬비아 등 16개국에서 왔다.

외국인 유학생 ‘천국이자 지옥’
콜롬비아 등 16개국 학생 88명 생활
환경 좋지만 공부는 혹독하게 시켜

광주과기원의 강점은 캠퍼스 국제화에 필요한 제반 시설이 고루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영어 공용으로 언어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데다 전원 독신용 또는 기혼자용 기숙사 제공, 전액 장학금 지급, 생활비 보조까지 받는다. 국내 어느 대학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좋은 환경이다.

기혼자용 기숙사와 생활비(30만~100만원)까지 주기 때문에 최근에는 결혼하는 외국인 유학생이 많아졌다. 올 들어서만 두 명이 결혼했다. 현재 결혼해 가족이 함께 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은 24명에 이른다.

2003년 석사학위를 받은 대만인 장페이춘은 당초 국내 유명 공과대학으로 유학 왔었다. 그러나 영어로 한다던 수업은 시늉만 할 뿐이어서 광주과기원으로 옮긴 경우다. 조선족 임상호씨도 인천의 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광주과기원의 소문을 듣고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임씨는 “석사과정 때는 영어를 쓸 일이 없었으나 광주과기원에서는 프로젝트도 많고, 영어도 원없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실 차원에서 외국에 한 학기씩 단기 연구과정도 보내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부하기는 어렵다. 교수들이 혹독하게 공부를 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에 탈락하는 학생들도 가끔 나온다.

김기선 교무처장은 “외국인뿐 아니라 모든 학생이 연구와 영어 실력 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해야 졸업시킨다”며 “가끔 수업을 제대로 못 따라와 자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경우 입학 때 토플 550점 이상이어야 응시자격을 준다. 한국 학생의 경우 졸업 때는 토플 580점 이상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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