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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Hot TV] 염정아 '장화, 홍련' 이후 연기력 '재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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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진다. 그러나 어떤 꽃은 오랜 기다림 끝에 망울을 터뜨려 가치를 더한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배우는 데뷔 초반에 화려한 조명을 받지만 어느 순간 초라해져 관객의 시선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처음에는 별 볼일이 없었지만 나중에 인정을 받아 대성하는 배우도 있다.

염정아(32)는 뒤늦게 주목을 받는 배우다. 데뷔 14년차지만 그녀가 본격적인 연기자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영화 '장화, 홍련'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며 집안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는 계모 역을 맡아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그전까지 마땅한 대표작이 없던 그녀에게 이 영화는 대표작이 됐고, '염정아의 재발견'이란 말도 들었다.

"연기생활 10여년 만에 겨우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전에도 잘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아니었나 봐요. '장화, 홍련'이후 연기자로서 자세가 달라졌어요. 더 많이 노력하고 준비하죠."

최근에는 MBC 수목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에서 연하의 남자 병수(김래원)를 유혹해 사랑을 쟁취하는 영화사 사장 이나를 연기하고 있다. 극 중 이나는 일도 사랑도 치열하게 하는 여성이다. 거래처 사장이 돈을 떼먹으려 하면 피를 보고라도 반드시 돈을 받아오고 만다. 싫다는 남자를 억지로 잠자리에 끌어들인 뒤 임신했다고 거짓말도 한다. 남자의 발목을 잡아 결혼을 강요하기 위해서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10% 미만으로 저조하지만 염정아의 연기는 무르익었다는 평을 듣는다. 특히 강렬한 눈빛과 몸 전체에서 풍기는 독기(毒氣)는 이나의 비정상적인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나를 연기하면서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만큼 배역이 저에게 맞다는 거죠. 이나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위해 일부러 슬픈 음악만 듣고 친구들도 안 만났어요. 그러나 실제 저 같으면 용기가 없어 이나 같은 사랑은 못할 거예요. 이나는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죠."

염정아는 1991년 미스코리아 선,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MBC)으로 연예계에 발을 디뎠다. 미스코리아와 연기자는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꿈꾸던 것이었다.

"어릴 때 미스코리아 대회 중계를 보면서 막연하게 동경했어요.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자마자 미용실로 달려갔어요.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려고요. 대학에선 학사경고를 받았지만 콧대가 하늘을 찔렀죠."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그녀가 데뷔하자마자 드라마 주인공을 맡을 수 있게 해줬지만 한편으로 연기생활에 한계로 작용했다. 그동안 출연한 드라마는 '태조왕건'(KBS) '순정'(KBS) '연인'(SBS) 등 스무편이 넘고, 영화도 '테러리스트' '텔 미 썸딩' 등 여섯편에 달하지만 연기력은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얼굴은 예쁘지만 연기는 그저 그런 배우라는 이미지를 벗어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겉으로만 어른이지 속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였어요. 조금 하다가 시집 가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죠. 한때 얼굴 피부가 망가지고 우울증이 찾아오면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어요. 스님들이 쓴 책을 읽으면서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서 이겨냈죠."

염정아는 곧 새 영화도 선보인다. 다음달 15일 개봉하는 '범죄의 재구성'에서 그녀는 도발적인 섹시함을 무기로 사기치는 여자 인경을 연기했다. "두 남자 사기꾼 사이에 왔다갔다 하며 사기를 치지만 수가 얕아 금방 들통이 나요. 성격은 도도한 것을 지나쳐 건방지기까지 하죠.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여자예요."

현재 그녀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다. 하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해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연기밖에 없어요. 우선 연기의 폭을 더 넓히고 싶어요. 그리고 아주 듬직한 남편을 만나 아이 둘을 낳고 살고 싶어요. 저 집안일 하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남편이 연기활동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라면 더 좋겠죠."

글=주정완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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