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는 지금] 홍콩 학생들의 자원봉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 홍콩의 아일랜드 스쿨(영국계 국제학교)에 다니는 유진이 지난 23일 중심가인 센트럴에서 플래그를 팔고 있다.

"안녕하세요. 플래그를 사지 않으시렵니까."

홍콩의 영국계 국제학교에 다니는 안젤라(15)는 지난 23일 아침 중심가인 센트럴(中環)에서 동분서주했다. 토요일이어서 학교를 쉬지만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모으는 '플래그 데이(Flag Day)'의 자원봉사자로 뛰었다. 이날 플래그(일종의 스티커)엔 마주 잡은 두 손으로 만들어진 하트 모양이 들어갔다.

그는 생면부지의 행인들을 상대로 미소 섞인 인사를 건넸다. "불우한 노인.어린이와 실직자를 도웁시다"라며 모금 가방을 내밀었다. 동서양 혼혈아인 그는 아버지가 스페인 출신의 유명 엔지니어. 남 부러울 게 없이 자랐지만 이날은 동전 하나라도 더 모으려고 기를 썼다. 행인 10명 중 두세 명은 주머니를 뒤지거나 지갑을 열었다. 1홍콩달러(약 130원)짜리 동전부터 20홍콩달러(약 2600원)짜리 지폐까지 모금 가방에 넣었다. 그러면 안젤라는 네모 난 붉은 플래그를 정성껏 붙여줬다.

같은 학교의 남학생 유진(15)은 자신의 얼굴과 윗도리에 플래그를 잔뜩 붙여 행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모금 가방을 쓱 내민다. 홍콩에 관광 온 외국인 부부까지 유진에게 '플래그 데이'의 취지를 듣고 주머니를 털었다. 센트럴 근처에는 30여 명의 중.고교 학생이 '애버딘 카이풍(街坊) 협회'(지역봉사단체)의 이름이 들어간 모금 가방을 메고 돌아다녔다.

안젤라는 이날 160여 장의 플래그를 팔았다. 그는 "모금액이 1400홍콩달러쯤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플래그를 붙인 행인에겐 다른 학생이 더 이상 기부를 권하지 않는 게 철칙이다.

이날 행사엔 홍콩 전역에서 1000명을 넘는 학생이 참가했다. 이들이 각 지역의 번화가와 쇼핑센터, 지하철역 주변에 한꺼번에 깔리고 행인들의 가슴에는 '자선의 상징'인 플래그가 물결쳤다. 격주에 한 번꼴로 있는 플래그 데이 때 초등학생들이 엄마 손을 잡고 자원봉사자로 나서기도 한다. 자녀의 손을 잡고 주말 나들이를 하는 홍콩인들은 어김없이 1홍콩달러라도 넣어 준다. 불우이웃 사랑을 가르치려는 배려다.

홍콩 정부의 청소년복무처에서 카운슬러로 일하는 양메이추이(楊美翠)는 "자원봉사 학생들에 대한 교육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자선.봉사단체들은 학생들 덕택에 한 번에 100만~200만 홍콩달러(약 1억3000만~2억6000만원)의 거금을 모은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